[4월 28일] 느헤미야 5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Apr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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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느헤미야 5장

찬양: 내가 주인 삼은, 예수 따라가며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들은 영적 전쟁속에서, 개인의 삶의 예배의 회복과 공동체의 회복을 이루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라들의 역사를 보면 민족의 위기가 있을때에는 외부의 공격도 위기이지만, 사실 진짜 위기는 내부 붕괴일때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5장의 유다 백성 내부의 위기는, 사실4장에서 외부로부터의 위기보다도 위기를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2그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대 사람들에게 원망을 하는데..” 아내들이 부르짖었다는 것은, 당시 남성 위주의 시대임을 감안해서 볼때, 아내들이 들고 일어설 정도이면 문제가 정말 심각했다는 것과, 집안의 살림을 담당하던 그들이기에, 그들이 직면한 문제가 지금 삶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현실적인 문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그토록 부르짖으며 원망한 이유는 무엇인가? 2-3절을 보면 우리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들은 적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속에서도 성벽의 회복이 하나님의 일임을 믿고 한손에 쟁기를, 한속에 창을 들고 묵묵히 나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경제적인 수입이 적을 밖에 없었겠지요, 그런데 3절에 보면 엎친데 덮친격으로 흉년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버텨가면서 밭과 포도원을 저장 잡혀서라도 곡식을 해결하라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지요. 피종조국으로서 페르시아에게 세금을 엄청난 세금도 내야 했습니다. 그러한 어려움이 어느정도까지 치닫는가 하면. 아들과 딸이 노예로 팔기까지 하는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디에서? 같은 형제인 유다백성안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살펴야 하는 지도자들이 그들의 부와 권력을 이용해 백성을 착취하는 일이 일어난것 입니다.


마음을 먹먹하게 것은 5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 그리고 성도들.. 어쩌면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답이 없고 힘이 없고, 방법이 없는.. 그러한 현실을 살아가야하는..


이런일이 그들에게 일어났을까요? 성벽공사만 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없었을텐데그런데 사실 문제는 성벽공사 때문이 아니라, 문제가 성벽공사를 통해 드러난 것이지요. 문제는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어쩌면 성벽공사를 하지만 않았더라면 문제가 없었을텐데..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앞에 회복을 꿈꾸며 나아갔기 때문에그들안에 있는 깊은 문제를 직면하게 것입니다. 마치 타이타닉이 침몰한 것이 빙산에 부딪혀서이지만, 사실 본질적인 원인은 크기와 경험만 믿고 경솔했던 교만함.. 그게 진짜 원인이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오늘 말씀이 우리 자신과 공동체, 사회안에 하나님의 집을 회복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있어 우리가 가진 죄악과 문제의 본질을 발견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중요한 영적 원리를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요. 느헤미야는 이러한 백성들을 부르짖음을 듣고 크게 노하였습니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한 것이지요. 거룩한 분노입니다. 그의 분노를 거룩한 분노라 있는 것은 그가 7절을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7절이 무엇입니까? “깊이 생각하고…” 깊이 생각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깊은 묵상, 문제의 본질에 대한 묵상과 기도가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성벽을 짖고자 했던 목적, 본질은,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다운 , 무너진 공동체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회복을 꿈꾸었지만, 그들의 실상은 백성의 지도자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오히려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에 급급한 것이 그들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생각한 것입니다. 과연 성벽을 세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만약 단순한 성벽을 쌓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었다면, 혹은 그가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했다면, 그는 성벽 공사를 잠시 멈추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적들이 시시탐탐 방해할 것을 노리는 때에 최대한 빨리 성을 쌓아올려야만 했었으니깐요.. 그리고 또한 사실 느헤미야의 입장에서는 누구보다도 지도자들, 실질적인 힘과 권력이 있는 이들의 협조 없이는 성벽의 공사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알았을 것입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 그들의 잘못을 덮어주면서.. 가는게 어쩌면 지혜로운 결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건축이 아무리 급해도, 아니 그것이 늦추어진다 하더라도,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잠시 멈추고 그들을 7 그들을 모두 모이게 합니다.


목적 뿐만 아니라, 방법에 있어서도 느헤미야가 지혜로운 것은 그가 먼저 지도자들을 무르고, 그들의 잘못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백성을 모읍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지금 경제적 어려움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무너진 성벽을 건축하고자 모두가 피땀흘려 일하는 가운데, 당신들은 어찌하여 높은 이자를 받고, 그들의 포도원을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 그들의 자녀를 노예로 팔려고 합니까? 어떻게 이러한 끔찍한 일을 하려고 합니까? 우리가 이방인에 손에 팔린 형제들을 힘을 다해 도로 찾아왔더니 당시 그들의 노예로 팔려고 하는 것이 과연 말이 됩니까? 세상이 우리를 머라 하겠습니까? 우리가 그들과 머가 다릅니까?


사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 자체를 나쁘다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그들이 높은 이자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소행이 좋지 못하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당시에 고리대금업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있는 자들이 돈을 있는 가장 쉬운 수단이었지요. 누구나 그렇게 돈을 벌었기에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을 때였습니다. 관행처럼 되어버려 더이상 죄라 여겨지지 않은 그때에.. 그는 깊이 묵상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보게 것입니다.


네가 만일 너와 함께 백성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며”(22:25)

타국인에게 네가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 그리하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23:30)

당시의 가치관으로는 누구도 죄라 여기지 않았던 이것그러나 그는 문제의 본질을시대의 가치관과 관습, 사상이 아니라” “성경에서 찾은 것입니다

세대를 본받지 말고…” 그도 역시 잊어버렸었던,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거기서 그들 자신의 행위를 비추어보았고, 거기서 문제의 본질을 깨닫게 것입니다.


그리고는 잘못만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실질적인 대안도 말합니다. 10 가난한 자들에게 원금은 받아도, 하나님 말씀대로 이자는 받지 말자, 그리고 그들에게 저장잡은 밭과 포도원과 집을 돌려주자


그것은 당시에 통용하던 경제의 논리로는 말도 안되는 것이었지요그것은 분명 경제의 논리는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논리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은 정의와 경제의 논리가 아니였고, 자비와 사랑의 논리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은 세상의 원리로 살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 백성이 살아가야 논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먼저 받은 사랑의 원리요, 은혜의 원리입니다.


놀라운 것은 바로 12 그들이 느헤미야가 말한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들 자신의 이권을 포기하는 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이렇게 순종하고 있는가?


느헤미야의 영적 영향력의 비밀은 바로 10절에 있습니다. “나와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 주었거니와느헤미야는 기준을 그들에게만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들보다도 제일 먼지자신에게 적용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자기와 자기의 형제들의 행위와 마음을 말씀안에서 살펴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영적 영향력이었습니다.


죄악이 얼마나 그들안에 만연했었는지, 느헤미야와 그의 형제들도 아무런 꺼리낌이 없었습니다. 이상할것인 전혀 없는 사회의 관행으로 여겨졌던 것이었지요. 그러나 그는 세상의 원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정직하게 것입니다. 자기 역시 그러한 죄가 있음을 하나님과 백성앞에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자기부터 죄악과 결별하겠다고 결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결단은 11바로오늘 지금, 자리에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듣고, 은혜도 받고 동의할 있지요, 그리고다음부터, 내일부터…” 하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늘 지금 이자리.. 하나님의 음성을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인 것입니다세상이 하니깐, 어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지라도, 오늘 우리는 말씀앞에 비추어봐야 합니다. 지금 이곳에서, 느헤미야와 같은 회개의 역사가 우리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누구보다도 돈에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14-15.. 이전의 총독과는 달리 그는 총독의 월급도 받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권리로 여겨졌던 것이었지만, 그는 백성들을 압제하거나 착쥐하지도 않았습니다. 1


16, 그는 땅을 사지도 아니하였다!라고 말합니다. 그의 권력과 힘은 누구보다도 땅을 사서 돈을 벌기에 좋은 위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 하면, 하나님도 기뻐하시겠지.. 라고 생각할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건물주가 꿈이 되어버린 우리와는 분명 달랐습니다. 그는 땅을 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7-18.. 한마디로 그는법카 쓰지 않았습니다. 나의 사익을 위해서 말이지요.. 얼마든지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 있었을까요? 비밀은…10나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같이 하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해도..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니깐.. 그리고 19절에바로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그는 이것을 알았고, 기억했고, 믿었습니다. 정직하게 살면서 받는 손해와, 희생을 누구는?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세상의 몇푼보다 그에겐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의 소중함을 하늘의 보상을 그는 알았던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누구보다도 안에 있는 죄와 직면하게 됩니다. “ 그런거지..”라고 여기면서.. 죄를 지어왔던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아닌, 세상의 가치관이 기준이 되어온 나의 삶을 들여다 보는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곳에서 회개한 것처럼, 또한 회개합니다


기도제목

1. 우리안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세상의 원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랑의 원리, 은혜의 원리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2. 코로나 바이러스의 문제와 고난앞에,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죄악을 직면하게 하여주소서. 우리가 회개하게 하여주시고, 이땅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고쳐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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