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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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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에스라 4장

찬양: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나의 평생에 오직 주님만 사랑하리, 


기꺼이 자신의 편안하고 익숙한 삶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감동을 받아,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며, 무너져 있는 성전, 그 예배의 삶을 회복하고자 그들이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게 될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셨고, 그것이 하나님의 꿈이었지 않은가, 그러면 모든 일이 순조롭고 형통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4장을 마주하면서, 그러한 우리의 기대는 깨어져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자들의 방해가 일어났고, 게다가 그들의 방해는 치밀하였고, 매우 공격적이었고, 또한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방해로 인해 성전 건축은 15년동안 중단되고 맙니다.


아니, 성공한 이야기도 아니고, 그들이 실패하여 중단된 이야기를 머 이렇게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을까… 그런데 그것보다 사실 더 문제는 이 본문의 기록이 역사적 시간의 순서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5-23절까지는 1차 포로 귀환과는 다른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1차 포로귀환에서 이루어진 성전건축의 반대만이 아니라, 6절은 아하수에로왕때의 반대, 7-23절은 아닥사스다왕(주전465-424)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축할때 일어났던 반대의 이야기..


그렇다면 저자는 왜 역사적 시간의 순서까지도 무시하면서 이렇게 하나님의 집의 건축의 반대를 함께 모아 보여주고 있는가..


물론 에스라, 느헤미야의 전체 구조를 보면 에스라 2장과 느헤미야 7장의 반복되는 명단을 통해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집은 단지 성전만이 아니라, 에스라의 영적 부흥운동, 느헤미야의 공동체 회복운동 모두를 포함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 이렇게 성전 반대의 기사를 길고, 미래의 일까지도 당겨서 구체적으로 기록하며 보여주고 있는 이유는 당시의 1차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메세지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들이 어떤 상황? 그들은 이제 막 포기에서 돌아와 공동체를 이루며 예배를 다시 세워나가던 자들… 그런 그들에게 던져진 가장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질문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의 가치관으로 굳게 세워진 이 땅에서, 그 영향아래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속에서, 삶의 예배를 다시 세우고자 했던 그들, 그러나 세상은 그저 내버려 두지 않지요, 그들을 그들을 방해하는 싸워야만 했습니다. 그 영적 전쟁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싸워야 할 대적!, 이 말씀은, 그들로(그리고 우리로) 하나님의 대적의 실체, 그들은 누구이고, 그들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땅에서 싸워야할 영적 전쟁, 대적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들은 어떠한 자들인가? 그들이 한 말을 통해 그들의 실체를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머라고 말하였나요?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에 엣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얼마나 전향적이고, 호의적입니까? 자신들도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니 성전 짓는거를 돕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당시 그들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한사람의 손이 아쉬웠을 때에, 아주 기가막힌 타이밍에 제의가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들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솔깃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족장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들의 결정은 달랐습니다. “너희는 우리와 상관없느니라,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어떤 도움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절 “이로부터” 바로 그때부터, 그들의 바로 그 결정때문에 그들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방해와 핍박을 받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 “왜 그들은 그 솔깃한 제안을 거절했을까..”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그들 스스로가 말한 것처럼 앗수르에 의해 예루살렘 땅으로 옮겨오게 된 사마리아와 그 외의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성경은 그들을 향해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라고 까지 이야기 말합니다.


그들이 어떠했기에 성경을 그들을 향해 이렇게까지 이야기 하는가? (열왕기하 17:33)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 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한 이유는, 그들은 그저 자기의 풍요로움을 위해 그 땅의 신이라 여기는, 자기에게 풍요와 안전을 주는 자를 섬긴다!는 마음과 생각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삶을 예배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삶속에 단지 예배를 포함 시킨 것 뿐이었습니다. 자기의 풍요로움을 위해서…


그들의 전략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공적이었습니다. 너의 삶에 예배가 아닌, 단지 예배를 너희 삶에 일부가 되게 하라! 그들의 이러한 전략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전략의 실체는 무엇이었는가.. 

학개 1장 2-5절. 핵가와 스가랴는 성전 건축 중단 시기에 활동했던 선지자들 그들이 무엇이라 말하는가 하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예배를 단지 너의 삶의 일부가 되게 해라! 예배를 드리지 말라는게 아니야, 그래~ 예배, 일주일에 한번 교회나가서 드리면 되는거 아니야?” 라고 하는 그 생각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게 만드는 것, 하나님이 그들이 주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그들의 삶의 주인이 되고, 하나님은 그저 도와주시는 분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대적들의 방해로 중단이 되자, 그들은 “아직 때가 안되었네”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자기의 풍요함을 위해 분주하게 살기를 시작했습니다. 학개가 말합니다. “이 전이 황혜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엥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옳으냐..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학1:2-5)


그렇게 분주하게 살았던 그 결과는 6절 “너희가 많이 뿌릴 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찌라도 배부리지 못하며,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니니라”


7절 선지자는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다시한번 말합니다.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찌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이 부요한 자요, 그래서 나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 그 교회, 유일하게 책망한 받은 그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는, 예배가 없어서의 문제가 아니라, 예배가 전부가 아닌, 일부가 되어버린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자신의 삶의 주인이 아닌, 그저 자신의 부요함을 가져다 주는 분!이 되어버린 그들의 신앙은 미지근한 신앙이었고, 토하여 내치리라 하신 역겨운 신앙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싸워야할 영적 싸움은 바로 이것입니다. “종교적 혼합”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지만, 그렇게 고백도 하지만, 하나님, 즉 나의 삶의 주권자, 주인, 전부로 여기지 않는 세속적 가치와 우리는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나의 삶의 주인임을 인정하며, 주일 온라인으로 한번 드리는 예배면 충분해!!가 아니라, 삶의 자리가 예배가 되어지는 것, 말씀대로만 살아감으로, 우리의 삶이 온전한 예배가 되어지도록.. 다시한번 우리의 마음을 살피고, 또 살피며,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그 영광이 우리에게 있기에 그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하나님, 우리로 교회됨을, 우리의 삶의 예배, 진정한 예배자로 회복되는 놀라운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아닌, 우리가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어 일어난 모든 죄악을 용서해주시고, 긍휼히 여겨 주셔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고통 받는 많은 이들을 고쳐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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