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2일] 역대하 2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Feb 12,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성전을 건축하는 솔로몬


찬송 20 영광 중에 계신

말씀봉독 역대하 2:1-18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결심하니라.(1v)”로 시작합니다. 무슨 결심입니까?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는 결심입니다. 솔로몬에게 있어서 건축은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솔로몬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결심은 사명을 이루기 위한 결심입니다.


결심을 한 솔로몬은 곧 바로 실행에 옮깁니다. 가장 먼저 짐꾼 칠만 명과 산에서 돌을 캐낼 사람 팔만 명. 그리고 그들을 감독할 사람 삼천육백명을 뽑았습니다(3v). 그 뿐만이 아닙니다. 두로 왕 후람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자신이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니까 도와 달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 보낸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결심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까? 성전 건축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결심은 실행으로 이어져야 현실이 됩니다. 실행으로 옮길 때 빛이나는 것입니다. 꿈을 꾸고,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실행해 옮겨야 합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눌러 앉아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여야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지금 자신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결심하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솔로몬이 두로 왕 후로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6절에서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이라고 질문합니다. 특별히 히브리인들은 하늘이 여러층으로 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대개 3층으로 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는 말은 최고로 높은 하늘을 뜻합니다. 가장 위에 있는 자를 말하죠. 그런데 그 가장 높은 자. 가장 뛰어난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5절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들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보면, “이 세상이 저 사람을 담기에 그릇이 너무 작아. 저 사람은 우리가 감당할 사람이 아니야.” 이런 말을 합니다. 그 사람의 능력이 뛰어나기에 여기 있을 수 없다는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죠.

이 세상에 현존하는 아무리 큰 무엇을 하나님께 가져다 댄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것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담기에는 부족합니다. 아무리 큰 성전을 지어도 하나님을 그 속에 담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제 2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십계명 중 2계명은 우상을 만들지말고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을 형상으로 표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아론은 금 고리를 빼내어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가져다 팔면 굉장히 비싸지 않겠습니까? 자신들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공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은 아주 큰 범죄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만든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동일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라 할지도 하나님을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것을 만들고, 최선을 다해 표현해도 우리의 머리로,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으로 하나님을 다 담고, 하나님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 무한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유한한 우리의 지혜가 따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6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어찌 능히 그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


하나님의 위대함 앞에서 나의 무능력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시고, 크신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 그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예배해야 합니다. 크신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시 145:1)”라고 하는 고백이 날마다 우리 입술에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며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1, 4, 6v)”라고 합니다. 성전 존재의 이유가 여호와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의 성전은 건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성전의 개념이 신약에 와서 바뀝니다. 어떻게 바뀝니까?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로 개념이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오늘을 사는 우리가 성전입니다. 우리가 성전이기에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호흡하는 이유는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고, 그 분을 찬송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의 이름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살고,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는 복된 우리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1.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2. 수요기도회에 성령의 충만함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