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역대상 13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Jan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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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찬송가 539장)

말씀 : 역대상 13:1-14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들여오기로 지휘관들과 의논하여 결정합니다. 5절에 보면

기럇여아림에서부터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고자 할새

기럇여아림은 숲의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아주 산골 지역입니다. 왜 하나님의 법궤가 이런 촌구석에 20년간 머물게 되었는지는 사무엘상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의 스승이었던 엘리제사장을 아실 겁니다. 엘리 제사장 시대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크게 패합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법궤를 가지고 나가지만 법궤는 빼앗기고, 엘리 제사장과 두아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블레셋 손에 들어간 하나님의 법궤로 인해서 블레셋 땅에 여러 가지 재난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 보냅니다.

그곳이 벧세메스입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열어 보다가 70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해서 기럇여아림이라는 촌구석에서 사는 레위 사람 아비나답의 집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사울왕 시대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어디있는지 관심도 없다가 다윗이 하나님을 너무 사랑해서 하나님의 법궤를 찾아 모셔오기로 한 것입니다.

아비나답의 집에 아들 웃사가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오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웃사는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와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레에 싣고 왔습니다.

대상 13:5, 개정) 이에 다윗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모으고 기럇여아림에서부터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고자 할새

(대상 13:6, 개정)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므로 그러한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았더라

역대상 저자는 당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메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웃사도 알고 있었음을 밝히기 위해서 반복해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고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웃사가 하나님의 법궤를 수레에 싣고 오다가 갑자기 소가 놀라 뛰어서 수레에서 법궤가 떨어지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웃사가 법궤가 떨어지려는 것을 손으로 잡았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사람이 손으로 잡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래서 법궤 네 귀퉁이에 고리가 있고, 막대기를 고리에 끼워서 법궤를 이동하는 것이지 사람의 손으로 법궤를 잡아서 움직이는 것으로 율법에 금지 되어 있습니다.

웃사는 이 일로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생각할 것은 웃사가 단지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느냐? 못지키느냐? 그것으로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문제는 왜 웃사는 하나님의 법궤를 메어서 이동해야 함을 아는데도 수레에 싣어서 옮기려고 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이동하는 일은 당시 국가적인 큰 일이었습니다.

(대상 13:1, 개정)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지휘관과 더불어 의논하고

(대상 13:2, 개정) 다윗이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좋게 여기고 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와 또 초원이 딸린 성읍에 사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전령을 보내 그들을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천부장 백부장 나라의 최고 지휘관들이 의논해서 결정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온회중, 백성들에게 결정에 대해서 말했기 때문에 온 백성의 관심사입니다. 웃사는 이 일을 잘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을 잘 할 수 있는 방법, 자신이 생각하기에 더 안전한 방법을 계획했던 것입니다.

웃사에게는 법궤가 하나의 궤짝, 물건에 불과했습니다. 자신이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물건으로 생각했습니다.

미신의 가장 큰 특징은 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무속인들은 부적 몇장으로 신을 자기 맘대로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굿 한 번으로 신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미신입니다. 요즘 기독교도 이렇게 변질되었지요. 내가 헌금을 많이 드리면 하나님을 통제할 수 잇다고 생각합니다. 봉사를 많이 하면 내 믿음과 상관없이 내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라고 오해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엘리 제사장 시대에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겼습니까?

하나님의 법궤를 부적처럼 전쟁에 가지고 나가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부적처럼, 물건처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 생각대로 부리고 통제하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너무 익숙해지고, 신앙생확이 너무 익숙해지면 , 오랫동안 신앙생활하다보면 하나님을 만날 때 설렘과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익숙해진 나머지 내가 생각대로 하나님의 뜻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내 생각을 주장하면서 그것을 신앙적인 결정이라고 착각합니다.

웃사가 20년동안 법궤 가까이 있으면서도 저주를 받았고, 오벧에돔은 3개월동안 법궤를 모셨는데도 축복을 받습니다.(14)


기도 - 필리핀 화산 폭발로 인한 이재민들 구호가 확산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