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어? 성경이 읽어지네!’ 강의의 마지막에 이르게 되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늘 나 를 숙연하게 하는 것 같다. 좀 더 열심히 달리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아있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사명과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명확하게 새겨져 있다. 이것을 내 마음에 새기시기 위해 일하신 하나님의 열심과 사랑을 생각하니 눈물이 흐른다. 강사님이 자주 사용하시는 표현처럼 ‘도대체, 내가 뭐라고......’
12주의 강의기간 동안, 보잘 것 없고 지극히 평범한 나를 강한 바람처럼 덮으시고, 인격적으로 다가오셔서 명확하게 자신이 누구신지를 알려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께 나는 어떤 존재이며, 또 그 분 앞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존재인지를 끊임없이 말씀해 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전능한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나를 그 분의 형상과 모양대로 완전하게 창조하셨다.” |
전능하시고 완전한 지혜자이시며 사랑의 완성이신 그 분이 나를 지극히 존귀한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단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던 말씀들이였는데,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이 진리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 진리의 말씀 때문에 나는 오늘도 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고, 기쁘다. 또 한편으로는 그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대로 제대로 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겸허해진다.
‘하나님은 왜 이토록 열심을 내셔서 나를, 인간을 창조하셨을까?’ 오랜 교회 생활로 인해 그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사랑의 교제를 하고 싶으셔서.’ 그러나 나는 ‘사랑의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대상인 나같은 사람과 사랑의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편에서는 너무 손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좀처럼 이해되지 않던 하나님의 마음을 ‘어? 성경’ 교육과정을 들으며,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통해서 말이다. 완전히 맞아떨어지는 적절한 예는 아닐 수 있지만 내가 가진 지혜가 제한적이라 이정도의 예밖에 찾지 못했다.
결혼 전이나 신혼의 기간, 나에게 아직 자녀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에도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즐겁고 재밌었다. 그러나 자녀가 태어난 이후, 그 아이가 때때로 아파서, 때때로 말을 듣지 않아서 속상하고 힘든 적이 많았지만 그 아이가 없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고 행복했다. 왜냐하면 속을 썩이긴 하지만 여전히 아이가 나를 사랑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 존재가 늘 나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사랑의 말로, 기분좋은 스킨쉽으로, 나만 바라보면서 ‘엄마 아니면 안돼~’하는 눈빛으로 바라봐 주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나의 마음은 무장해제다. 나 또한 그 아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그 아이를 사랑한다. 그 아이는 나에게 눈부시게 아름답고, 눈물겹도록 사랑스러운 존재다. 이름만 불러도 마음이 시릴 정도로 좋다. 매일같이 살지만 슬립오버 한다고 하루 친구집에서 자고 오는 날이면 그렇게 보고 싶고 그리울 수가 없다. 내가 베푸는 사랑에 비해 터무니없는 대접을 받을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벽에다 대고 혼자 얘기하는 기분을 들게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의 존재는 나에게 행복 그 자체다. 자녀들과 나누는 사랑의 교제는 나를 이토록 행복하게 만든다.
부족하지만 내가 내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 비추어, 내 자녀와 내가 나누는 사랑의 교제를 통해 어렴풋이 하나님의 마음을 유추해본다. 나를 창조하시기 전에 내가 가장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6일 동안이나 공들여 만드시고, 마지막으로 나를 창조하셨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묵상해 본다. 그저 나라는 존재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싶어서 이 많고 많은 일들을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본다.
이 크고 위대한 사랑 앞에서 나는 자발적으로 굴복할 수밖에 없다. 이 하나님 때문에 인생의 후반전은 제대로 살고 싶어졌다.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사명 감당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졌다. 한날 숨결같은 인생의 길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나를 향해 있었던 관심을 하나님의 나라로 돌리며 살고 싶어졌다.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뒤돌아서지 않겠다. 사명 앞에서 타협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
인생의 전반전은 나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마음 때문에, 자기를 주장하고 싶었던 마음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구속과 속박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믿음있는 것처럼 포장하며 살아왔다. 내 마음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면 믿지 않는 자와 별반 다르지 않는 인생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내 아이에게 나의 모든 관심과 에너지와 물질을 쏟아 붓고 살아왔다. 하나님께 구원도 받고, 가나안 문화에도 속해 즐기며 살고 싶어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난할 자격이 내게는 없다.
이제 이 모든 것을 나의 유일한 왕, 내 삶의 진정한 통치자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내려놓는다. 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그 나라 백성답게 살다가 주님 앞에 서는 날 눈물로 주품에 안기고 싶다.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잘 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내 딸아~. 열심히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는 너를 바라보는 내내 나는 기쁘고 행복했다’라는 고백을 들을 수 있기를 꿈꾸며 살겠다. 정체성을 놓지 않고, 끝까지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명의 구간을 믿음으로 달려갔던 믿음의 선진들처럼 말이다.
셋 계열이 가인 계열과 섞임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렀던 것을 기억한다. 가인 계열 때문이 아니라 셋 계열이 제대로 하나님 백성답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을 사랑으로 정복하고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 나뿐만 아니라 앞으로 오고 오는 여러 세대들이 이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말씀을 부지런히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시작된 복이 민족과 열방까지 흘러갈 수 있도록 앞으로 부지런히 말씀을 연구하고 배우고 전하겠다
마지막으로 강의를 듣는 동안 너무나 은혜를 받았던 찬양을 나누며 이 글을 끝내고 싶다.
<<그가 다스리는 그의 나라에서-마커스 워쉽>>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일까
아픔과 슬픔이 없는 나라인가요
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은 걸
하나님 나라에 살고 싶어요
하나님 나라는 이곳이란다
여전히 아프고 슬픈 일이 있지만
행복과 기쁨이 여전히 있는 걸
우리가 하늘과 땅의 통로야
이땅에서 하늘 뜻을 품고 사는 자들
믿음으로 하늘 뜻을 보여주는 자들
보내어진 자리에서 동참하는 자들
믿음으로 주님 보길 소망하는 자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사
회복하고 통치하시네
주님이 이곳에 나타나 오시는 날
세상과 우리는 완전하게 변할 거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너희에게 전해 줄 거야
그것이 우리가 해야할 사명인 걸
그가 다스리는 그의 나라에서
이미 왔으나 아직 오지 않은
지금 여기 임한 그 나라
지금 이루어가고 앞으로 이루어갈
평화의 나라 하나님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