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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나의 영원하신 기업(찬송가 435장)

말씀 : 사무엘하 14:1-33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오랜 시간 적대국으로 있던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만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현재 미국이 포함된 남북 관계는 화해의 급 물살을 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처럼 역사 속에는 많은 화해가 등장을 합니다. 그 화해 가운데는 진정성이 있는 화해도 있습니다. 할 수 없이 손을 잡는 화해도 있습니다. 그리고 ‘차라리 화해하지 않은 것이 더 좋았다. 안 한만 못하다.’라는 화해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윗과 그의 아들 압살롬의 화해가 바로 이런 안 한만 못한 화해입니다. 어제 우리는 압살롬이 배다른 형제인 암논을 죽이고, 그술로 도망 친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다윗과 압살롬의 관계에 금이 갔습니다. 그 무엇보다 서로 아끼고 사랑해야 할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가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장이 바뀐 오늘 본문 1절에서도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향하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향하고 있다고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여전히 압살롬을 사랑하고 있구나. 역시 아버지의 사랑은 끝없어. 아버지는 달라.’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 "향하여"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알"이라고 하는 단어는 "향하여"라는 뜻과 함께 "반대하여"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다윗은 압살롬에 대해 여전히 적의를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압은 조금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왕은 다윗이지만 머지않아 압살롬이 왕좌에 오를 것이라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압은 압살롬을 귀환시키고, 다윗과 압살롬이 서로 화해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 방법이 2-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방법입니까? 드고아 출신의 여인을 섭외한 후에 자신이 꾸며낸 이야기를 다윗 앞에서 말하도록 지시하는 것입니다. 다윗 앞에서 연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드고아 여인의 입을 통해서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6-11절은 이 여인의 꾸며낸 이야기와 다윗의 대답을 다룹니다. 과부인 자신에게 두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들에서 싸우다가 한 아들이 다른 아들을 살해했습니다. 그러자 친척들이 남은 아들을 죽여서 죽은 아들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남은 아들마저 죽게 되면 이 여인이 혼자가 되는 것은 둘째 문제이고, 남편의 후손이 끊어지는 처참한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왕이 나서서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남은 한 아들을 지켜달라는 말입니다. 그러자 다윗은 여인이 집에 가 있으면 그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집요 할 만큼 자신의 아들이 살 수 있는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왕이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그러자 여인이 이제는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데, 그것이 12-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13절입니다.


13 여인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왕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하여 이 같은 생각을 하셨나이까 이 말씀을 하심으로 왕께서 죄 있는 사람 같이 되심은 그 내쫓긴 자를 왕께서 집으로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3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압살롬입니다. 그러므로 압살롬에게도 자신의 아들에 대한 판결과 동일한 적용을 해 달라는 것입니다. 압살롬을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장면을 묵상하다보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사무엘하 12장에 등장하는 나단 선지자입니다. 나단이 밧세바를 범한 다윗에게 찾아갑니다. 그리고 부자의 비유를 들어서 다윗에게 뜻을 전달합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드고아 여인과 비슷합니다. 왕인 다윗에게 나아와서, 비유로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둘에게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삼하 12:1을 보면, 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보내신 자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를 가지고 다윗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드고아 여인은 요압이 보낸 자입니다. 인간의 꾀를 가지고 왕에게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을 가지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왕 앞에 선 것입니다. 그 결과도 완전히 달랐습니다. 나단의 비유를 통해 다윗은 회개를 했습니다. 하지만 요압의 손에 붙들린 드고아 여인의 비유는 어땠습니까? 21절 이후에 보면, 드고아 여인의 비유를 통해 압살롬이 돌아옵니다.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 압살롬의 예루살렘 복귀는 크나큰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화해한 것 같지만 다윗은 여전히 압살롬 보기를 거부했습니다. 형식적 화해는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압살롬에게 적대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압살롬은 결국 반란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차라리 화해를 하지 않는 것이 훨씬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인간이 만들어 낸 꾀의 결과는 바로 이렇습니다. 당장은 그 상황을 빠져나가고, 머리를 잘 굴려서 이익을 보는 것 같지만 그 결과는 더 큰 고통과 어려움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회사, 가정, 교회 그리고 학교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 앞에서 많은 말과 행동을 하고,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이 아침에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는 회복과 새로운 능력을 공급하지만, 인간의 꾀는 더 큰 화를 만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꾀를 내어서 주의 뜻과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대로 말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를 얻어서 주의 뜻대로 분별하고, 행동하는 오늘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어지는 18-20절을 보면, 다윗은 드고아 여인의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챕니다. 그러자 드로아 여인은 요압이 시켜서 한 것이라고 자백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성경은 이 씬을 제대로 마무리도 하지 않은 채 이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21절입니다.


21 왕이 요압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청년 압살롬을 데려오라 하니라


왜 이것이 특이한 점입니까? 가만히 보십시오. 요압이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왕을 속였습니다. 드고아의 여인을 배우로 세워서 왕을 가지고 논 것입니다. 그리고 왕은 그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드로아 여인을 통해서 확인까지 했습니다. 왕으로써 정말 화가 나는 일 아닙니까? 왕의 권력으로 요압을 처벌해야 하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왕의 태도가 어떻습니까?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어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 일을 주도한 요압을 불러서 요압의 뜻대로 하도록 허락하고 있습니다. 요압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요압이 휘두르는 권력 아래에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왕권을 흔들려고 하는 요압에게 다윗은 꼼짝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바로 요압이 밧세바의 사건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누구보다 충성스러웠던 우리아를 죽였다는 사실을 요압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무 말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특별히 교회의 지도자들이 정직하고, 순결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정직하지 못하고, 우리가 순결하지 못하면 세상이 우리의 목을 잡고 흔들어도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파하고, 전도를 해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정직하고 순결한 모습을 유지해야 합니다. 오늘도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직하고, 순결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1. 하나님의 지혜가 오늘도 나와 함께 있게 하옵소서.

2. 정직하고 순결한 오늘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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