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왕은 누구인가?(사무엘상 12장)
찬송가 : 38장
사무엘의 관점에서…
오늘 본문은 사무엘이 자신의 통치권을 사울에게 이양하면서 하는 마지막 고별설교라고 할 수 있다.
수십년동안 마지막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여 온 사무엘이 이제 그 통치권을 타인에게 이양한다는 것은 사무엘 개인적으로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였을 것이다. 그것도 사무엘 자신이 원해서 하는 통치권 이양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에 의해서 어쩔수 없이 하는 리더십 이양인지라 더욱 사무엘의 심경이 복잡할 수 있다.
우리도 지금 내가 회사 안에서나 또는 어떤 공동체 안에서 내가 맡고 있는 지위나 어떤 행사할 수 있는 힘이 나의 선택이나 의지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면 그것만큼 자존심 상한 일이 없을 것이다.
본문의 2~5절에 사무엘의 그 복잡한 심경이 잘 드러내고 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는 말에서 ‘내가 이제 늙고 무능해서 이스라엘의 리더십의 자격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나도 모르는 어떤 부정한 죄를 지은 것일까? 누구의 소나 나귀를 속여서 빼앗았거나, 누구에게 뇌물을 받은 적이 있는 것인가?’ 하는 이런 저런 질문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사무엘이 이렇게 생각하고 복잡한 심경이 들 수 있는 이유가 삼상11:12~15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울이 이룬 승리에 도취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기를 ‘누가 사울이 왕이 될 자격이 없다고 했느냐? 그렇게 말한 사람을 죽이자’ 라고 까지 하면서 사울을 치켜 세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히 인간 사울에게 푹 빠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사무엘은 6~11절 말씀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승리, 모든 구원의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밝힌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라는 주어를 쓰면서 그 사실을 밝히 드리내고 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는 이 말씀 속에서 사무엘이 큰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사무엘은 비록 지금 이스라엘의 최고 리더십의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애초에 사무엘 자기 자신의 능력이나 권세가 아니였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능력을 주신 것이고, 자기는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은 것이다.
<적용>
우리도 때로 지금 까지 우리가 누려왔던 어떤 것들을 당연히 내가 누려야 마땅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회사에서의 직책도 그렇고 교회에서의 직분도 그렇고 그리고 가정에서의 부모라는 위치도 그렇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이루어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만약에 이 중에 하나라도 그 위치가 흔들리면 나의 왕권이 흔들리는 것 처럼 불안하고 견딜 수 없는 불안함을 느낀다. 그런데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내가 지금 누리는 이 모든 부와 명예와 지위는 내가 잘나서, 내가 잘해서 이룬 것이 아닌,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은사요 달란트요 은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여기까지가 사무엘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이라면,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도 이 상황을 생각해보기 원한다. 본문 12절에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서 지적한다.
사실 ‘왕 제도’자체가 나쁜게 아니다. 하나님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의 왕정제도를 하나님의 구속사 가운데 염두 해 두셨고,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왕 중의 왕이신 하나님을 더욱 밝히 드러내려는 계획도 가지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왕 요구’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하면은 그들이 자신들의 육신의 왕 때문에 진짜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못 보기 때문이다. 눈 앞에 보이는 육신의 왕만 찾고 그것을 의지하느라 눈에 보지이 않는 실질적인 자신들의 왕이신 하나님… 자신들을 구원하시고 전쟁에서 승리케 하시는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왕에게만 집착하고, 그리고 그것이 또하나의 우상을 만드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것에 해서 경고하시는 것이다.
<적용>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다른 이방 나라들 처럼 우리에게도 왕을 세워달라는 간청했던 것 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이방인이 구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이방인의 간구가 무엇인가? 우리가 잘 아는 마6:31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문제들이 이방인의 간구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이방인의 간구를 너희가 염려하지 말라고 했지, 간구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먹는 것, 입는 것, 생활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것들이고, 그리고 단순히 ‘필요’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적당한 즐거움’을 위해서도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하나님께 당당히 구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것들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주’가 될 때 문제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구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에 보이는 왕을 구하는 것 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질적인 하나님을 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결단과 적용
말씀을 정리하며,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내가 스스로 왕이 되어 살아가다가 그 왕권이 흔들리면 견딜 수 없는 불안함을 느꼈다면, 나의 모든 것이 애초에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시며 나아가시고,
오늘 우리의 간구도 이 세상의 것을 왕으로 삼고 그것을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그리고 눈에 보이는 문제 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영혼의 문제, 내 자녀들의 영혼의 문제를 생각하며 그것들을 먼저 간구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여선교회 모임 가운데… 말씀을 공부할 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깊어지게 하시고, 성도간의 나눔을 통해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