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 사사기 16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Jul 2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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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죄에서 자유를 얻게함은(찬송가 268장)

말씀 : 사사기 16:1~31


오늘 읽으신 말씀은 사사 삼손에 대한 이야기중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로도 제작될 정도로 아주 드라마틱한 내용이 담겨있는 말씀입니다. 삼손과 들릴라와의 연정, 그리고 배신, 절망 그리고 극적인 승리로 이어지는 구조가 마치 오늘날 인기있는 아침드라마의 극적요소와도 비슷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정작 사사기의 기록형태를 염두해본다면 삼손의 이야기는 15장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맞습니다. 블레셋을 이기고 승리하여 20년간 평화롭게 지냈다는 것이 다른 사사들의 마지막기록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무언가 중요한 내용을 첨언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5장으로 마쳐도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1장이나 더해 그내용을 자세히 서술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16장을 읽으시면 우리는 사사시대의 죄의 악순환이 왜 끊이지 않았는지를 알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명맥을 유지하며 살수있었는지를 확인할수 있게 됩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죄의 악순환의 이유는 아시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우상을 사랑하였기 때문이죠. 오늘 말씀은 그 사실을 삼손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1절의 말씀을 보시면 삼손이 가사에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말 그대로 인간적인 욕정으로 창기의 집에 들어간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한순간의 욕정과 실수가 이스라엘을 망하게 한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2절과 3절을 보시면 삼손은 그 와중에도 사사로서의 모습을 회복해서 승리의 증거를 가지고 헤브론으로 돌아옵니다. 성문은 당대 문화에서는 국력을 상징합니다. 즉 블레셋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행동입니다. 사사로서의 분명한 흠이 있었으나 하나님은 그 흠으로 인해 일을 멈추시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후에 일어납니다. 삼손의 이 흠이 결국에는 죄의 악순환으로 달려가게하는 기폭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함께 4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여인으로 인해 죽을 뻔한 고비가 있었습니다. 물론 승리를 하였지만 삼손은 그것이 주는 경고의 의미를 알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거기서 더 나아가 들릴라라 하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관심과 마음이 이제는 성적인 삶으로 기울어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전히 사사입니다. 여전히 이스라엘의 리더입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점차로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그의 삶속에 항상 자리잡고 있던 욕망이 그의 모든 것을 차지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이 들릴라와 마치 사랑싸움하는 것처럼 보이는 3번의 사건들입니다. 삼손의 힘의 원천을 찾고자 갖은 교태를 부리는 들릴라와 그것을 어떻게든 피해보려는 삼손과의 논쟁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말씀에는 3번의 사건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보다 더 많은 질문과 답이 있었음에는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16절 말씀을 보시면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고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이 저는 이 구절이라 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평안함속에 살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저 상황에 있었던 겁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께 예배하고 제사하고 만나지만, 그들의 마음은 다른곳에 점점 끌려가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마음에 번뇌가 일고, 그래서 죽을만큼 괴로웠던 겁니다. 이론적으로보면 버리면 됩니다. 까짓껏 들릴라를 버리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안되는 이유,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것에 휩쓸려 버리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외적인 평화의 시대가 왔다고 다 이루어진 것이라며 스스로 자족하고 스스로 만족하는 삶에서 끝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 평화의 시대에 맞는 삶을 살아내야 비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삼손도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약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약점이 있어도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과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행해야 할 것은 그 약점이 다시는 나를 정복하지 못하도록 주의 십자가에 못박아버리려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겁니다. 삼손은 그것을 등한시했습니다. 결과가 있었으니 모든 것은 다 괜찮다고 여긴것 같습니다. 그결과가 무엇입니까? 평화의 시대에 계속적인 번민을 경험하는 것이었으며, 죽을것 같은 이유없는 아픔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닌 들릴라를 의지하는 무모함의 길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사사시대 이스라엘이 빠진 악의 순환고리였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버린것, 그리고 눈에 그럴싸해 보이는 바알과 아세라를 의지해버린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사시대를 저주의 시대로 최종적인 해석을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22절의 말씀과 같은 하나님의 마음때문입니다. 함께 22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삼손의 머리털이 그에게 능력을 준것은 아닙니다. 삼손의 이야기에서 시작하다 라는 저 단어가 13장 5절에서 쓰였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13장 5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삼손의 불신앙의 모습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이 말씀은 계속 유지되고 있음을 상기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특출난 사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사기의 기자는 삼손의 이야기를 빌어서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은 지금의 연약함에 무릎을 꿇거나 낙심하지 말고,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이 마음을 믿음으로 의지하여 우리의 마음을 다시금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은혜의 시대를 살아가라는 격려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삼손보다 우리가 더 신앙적으로 대단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삼손이 지은 죄나 우리가 지었던 죄나 무엇이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죄의 모양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습니다. 그렇다면 사사기의 기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이 외침에 귀기울이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연약함때문에 할 수없다는 생각은 버리십시요. 그리고 우리는 연약하지만 강하게 하시는 주님때문에 할 수 있음을 믿으시고, 또 해낼수 있음을 신뢰하십시요. 그리고 주님이 주신 이 강함을 경험했다면, 거기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나온 길에 혹여 부족하고 연약했던 모습을 주님께로 다시금 가져와서 그 모습마져도 강하게 온전하게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순간에서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아 우리역시 동일하게 말씀의 능력을 포기하지 않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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