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 소명 (삿2장)
찬송가 (496장) :
서론 _ 내용 요약
사사 드보라 이후에 또 이스라엘은 여호와 앞에 범죄하여 악을 행한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 넘기시고,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압제로 인하여 고통 속에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그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할 사사로 기드온을 지목하신다.
하나님은 왜 기드온을 고집 하시나?
그런데 사사기 6장을 읽으면서 제 안에 느껴지는 감정은 ‘답답함’이였다. 답답함을 넘어서 짜증이 밀려왔다. 하나님이 기드온을 고집하는 이유가 뭐라도 있겠다 싶어서 계속 찾아보려고 애를 써봤지만, 결국 못 찾았다.
하나님이 기드온을 부르시는데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원망하는 말’로 반응하고, 그리고 몇 번이나 의심하고 또 표징을 구하고, 하나님은 또 그런 기드온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또 얼마나 겁쟁이인가! 11절에 미디안 사람들에 들킬까봐 포도주틀에 숨어서 밀을 타작하고, 또 27절에 하나님이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부수라는 명령에 두려워서 한 밤 중에 종들과 같이 가서 행한다.
사사기 6장 마지막 까지 기드온의 모습은 답답하기 그지 없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선택한 히어로인데… 그 히어로에게서 전혀 히어로 답지 못한 모습만 보인다.
알고보니 기도온의 모습이 완전 내 모습
요몇일 동안 틈틈히 기드온을 묵상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깨닫게 된 사실은 내가 그렇게 답답하게 바라보고 있던 기드온의 모습이 꼭 나의 모습과 같았다는 사실이다.
두려움 많고, 의심 많고, 하나님이 말씀 하시면 이런 저런 핑계 대기 바쁜 그런 나의 모습이 떠올려 졌고,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도 기드온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러면서 또한 동시에 든 생각이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도 얼마나 답답하실까? 하는 생각이였다. 제가 기드온의 모습을 보면서 든 생각을 동일하게 하나님이 나를 보면서 하시지 않으셨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또 이런 저의 모습을 저 스스로 사랑해주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주겠는가 생각하면서 나 자신을 보듯이 따뜻한 시선으로 기드온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 마음으로 본문을 다시 보았더니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이 있었다.
기드온이 처한 시대 상황 (1-10절)
1-10절에 지금 이스라엘과 기드온이 처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스라엘이 여호와 앞에 악을 행했고,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기셨고, 이스라엘은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그런데 6, 7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표현이 두번 반복해서 나온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지금 겪는 고통이 이전 보다 훨씬 더 극심한 고통이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암시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 선지자를 보내시는데, 이 전 삿5장 까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그 즉시로 하나님은 사사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이번에도 역시 그런가 보다 하고 보는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하나님이 한 선지자를 보내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게 아니라, 도리어 이스라엘을 책망하신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그 만큼 이스라엘의 죄악이 하나님의 인내심을 시험할 만큼 극에 달했었다는 말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기드온이 소명을 받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부르심에 대한 기드온의 반응 (13절)
12절에 여호와의 사자는 기드온에게 찾아가서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며 기드온을 부른다. 그에 대한 기드온의 반응이 13절 말씀인데 함께 읽겠습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삿6:13)
처음에 이 구절을 읽을 때는 ‘자기네들이 범죄해서 이렇게 된건데 도리어 누구를 원망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절박한 상황을 모르고 그 속에 있지 않은 내가 저의 차가운 시선으로 기드온을 바라 보았던 것이다.
절망스러운 현실 앞에서 기드온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 외침 속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고백’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는 이 절규에 가까운 외침은 ‘이스라엘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인정하는 고백이다.
목숨을 건 순종 (25-32절)
그리고 또한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을 걸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버지 집에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으라는 말씀에 기드온은 비록 두려워서 밤에 행하긴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을 걸고 순종했다.
그런데 사실 그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예를 들어 하나님이 오늘 새벽에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이슬람 사원에 가서 거기에 있는 꾸란을 다 모아서 그 자리에서 불살라 버리라 명하신다면 두렵지 않겠어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긴 하지만 인간적으로 두려울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이 몰려 오는 상황이지만, 그 속에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고 신뢰할 수 있느냐 이다.
예화
이런 기드온을 묵상하면서 떠오른 한 이미지가 있다. 바로 저희 둘째 영인이였다. 영인이는 완전 엄마 바라기이다. 길을 혼자 가다가도 한번씩 둘러 보고 엄마가 자기 시야에 있는지 확인하고 있으면 안심하고 또 달려 간다. 만약에 둘러봤는데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그 즉시 울음이 터져 나온다.
삿6장에서 보여지는 기드온의 모습이 꼭 이와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기드온이 정말로 큰 용사가 되어서 300명의 정예부대로 미디안과 싸워 승리를 거뒀지만, 오늘 6장에서 보여지는 기드온의 모습은 엄마를 잃어버릴까봐 두려워 떨고 있는 어린 아이의 모습과도 같다.
또 기드온을 대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모습이냐! 두려워 떨고 있는 아이를 보듬어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다독여 주고, 격려해주는 자상한 어머니의 모습이다.
결단과 적용
우리의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식도 이와 같다. 우리는 어리석은 양 같아서 갈바를 모르고 방황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찾아 산기슭을 헤메시고, 구렁에 빠진 나를 건져서 품에 안으시어,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 이 진리를 믿으시고, 부족한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결국 선한 길로 인도해 내시는 하나님의 견인하심을 믿으심으로 오늘 하루도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 내 안에 걱정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자녀의 진로에 대한 걱정, 인간관계로 인한 어려움등…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들로 인해서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것으로 나날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두려움을 이기고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 볼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하소서.
- 내일 있을 예배 가운데 성령님 충만하게 임재 하여 주옵소서. 말씀 전하시는 담임목사님, 모든 부서 설교자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대언하여서, 은혜를 끼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