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 너 시험을 당해 (찬송가 342장)
말씀 : 사사기 3:1~31
오늘 말씀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사사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사사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로, 이스라엘이 그들의 죄때문에 생긴 열방의 침략과 그속에서 겪는 고통에 대한 구원의 갈망속에 하나님이 특별히 세우신 이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때로는 선지자로, 때로는 제사장으로 때로는 왕으로서의 모습으로 이스라엘에 등장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는 웃니엘과 에훗과 삼갈이 사사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간략하게 기록된 삼갈을 뻬고는 사사시대의 죄의 사이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그렇다면 왜 사사들이 세워져야만 하는 시대가 오게 되었을까요? 오늘 성경 1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하나님은 가나안의 전쟁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시려 하셨다고 합니다. 전쟁은 이미 오래전에 끝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공적인 선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전쟁을 알지 못하는 여호수아 이후의 세대들을 시험하려 하셨을까요?
그것은 아직 여전히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계속해서 점령해나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3장 1널과 5절, 6절의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내가 명령한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하되, 너는 이 땅을 아홉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 하셨더라.”
하나님은 분명히 아직 정복하지 않은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시고,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정복하지 않은 땅이지만 지파들에게 분배하여 주었습니다. 즉 각지파별로 경계한 가나안족속들은 함께 가야할 이들이 아니라 정복해야할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지파들은 이들을 정복하고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힘있어보이는 족속은 그대로 두기도 하였고, 대부분 강한 권력으로 그들을 종으로 굴복시켜 다스리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과는 다르게 가나안족속과의 동거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4절이 이렇게 하나님의 시험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남겨두신 이방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이 명령에 순종할 의지가 있고 또 따를 마음이 있는가 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진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호수아서가 보여주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적을 몰아내는 그 믿음을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전쟁의 승패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그것은 여호수아서가 분명히 우리에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시면 완전히 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
7절과 8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이스라엘이 전쟁을 먼저한 것이 아니라 메소보다미아가 먼저 전쟁을 걸어옵니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이기기는 커녕 8년을 종노릇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바로 저 순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기를 바라신 겁니다. 갑작스레 시작된 이 전쟁을 통해 여호수아시대를 떠올리고, 인도하시며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만나고 싶고 교제하고 싶으셨던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때에 이스라엘이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전쟁의 순간에도, 8년여의 종살이에도 이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과 아세라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만나고 싶어서 어차피 점령해야할 민족들에게 강제적으로 나아가게 하신 것인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모르니 그 오랜 세월을 헛되게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8년의 시간속에 답을 얻지 못한 이들이 그제서야 하나님을 기억해 냅니다. 전쟁의 승리자이며, 그의 자녀들을 품으시고, 승리를 안겨주시는 그 하나님을 말입니다. 그래서 9절을 보시면 하나님께 8년이 지나서야 부르짖고 있는 겁니다.
말씀을 보시면 이스라엘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을때 하나님이 바로 답을 주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치 기다리신것처럼 말입니다. 왜 일까요? 이 전쟁은 처음부터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주어진 시험이었고, 이제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시험의 내용을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로 손을 내밀어 주시는 겁니다.
그렇게 웃니엘 사사가 세워지고 그를 통해 전쟁의 주관자 이신 하나님이 승리를 선물로 주십니다. 그리고 11절의 말씀은 40년을 평온했다고 기록합니다. 저는 이 평안함이 하나님의 주신 승리의 결과라고 여겼었습니다. 아마 이스라엘도 그렇게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스라엘은 평온의 시기를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해야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지금의 승리를 가지고 온전한 가나안의 정복을 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정확하게 알고 정확하게 경험했다면, 웃니엘의 승리를 시작으로 아직 점령하지 못했던 족속들을 점령하고, 종으로 삼았던 그들을 몰아냄으로 이스라엘 가운데 우상숭배와, 가나안의 문화와, 그들의 음란한 문화를 종식시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당장 살것같고, 계속적인 평화가 오니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렸던 겁니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사사 에훗이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고, 사사 삼갈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확실히 알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우리를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만나시려고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과 했다고 여기십니까? 그럼 그때부터 본격적인 하나님과의 교제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찾음으로 1차 시험자체는 통과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시험이 주는 근본적인 이유는 발견하지 못했고, 이루어내지도 못했습니다. 그 결과가 다람쥐 쳇바퀴도는 것과 같은 악함의 악순환을 경험하고, 결국에는 하나님이 있음에도 하나님없다고 하면서 자기 멋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 우리는 이러한 우를 다시 범하지 않기 바랍니다. 시험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시작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끝났다고 해결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시작으로 그 시험을 통해 얻은 은혜와 힘과 능력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선순환을 만들어 냄으로 영적인 사사시대를 살아가는 내가 아니라, 영적인 부흥기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