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6일] 출애굽기 34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Dec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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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슬픈 마음 있는 사람(찬송가 91장)

말씀 : 출애굽기 34: 1~35


오늘 읽은 출애굽기 34장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두번재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보내시고 하나님의 명령을 친히 돌판에 기록하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의 우상을 만듦으로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이 노하셔서 모두가 다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모세의 중보로 죽음을 모면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다시 계명을 주시는 장면이 오늘 말씀의 배경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시면 지금 이 모습이 창세기의 사건과 아주 많이 닮아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의 첫번째 약속을 거역함으로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당장의 죽음을 면하게 되고, 구원의 약속을 받았던 아담과 하와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약속을 받았지만 그 약속의 삶을 살아내지 못함으로 위기에 처하는 것,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약속받고 새로운 언약속에 살아가는 것, 이 두가지 개념이 오늘의 사건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 두번째로 언약해주시는 것과, 아담과 하와의 범죄이후의 삶이 서로 같은 해석을 할수 있는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해석할 힌트가 되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의 삶이 결국 무엇입니까? 

창세기 3장 17절의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평생에 수고하여야 살수 있다는것이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 말씀 1절을 보십시요. 하나님은 모세에게 처음것과 같은 돌판을 만들라고 명하십니다. 처음 돌판은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서 주셨었죠. 즉 새로운 언약은 우리의 수고가 같이 있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이 전제되어야 이 언약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 사실을 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르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하건대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주의 기업으로 삼으소서.”

왜 우리의 수고와 헌신이 필요합니까? 언뜻보면 죄로 인해 생긴 저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더 깊게 말씀을 묵상하면, 하나님이 그의 자녀된 우리를 저주아래에 두실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수고는 새롭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무엇으로요? 9절의 말씀처럼 우리와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기억하고 만남으로 더이상 죄의 길에 서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음에도 우리에게 헌신과 수고와 열심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입니다.

어제 성탄을 맞아 로컬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요, 말씀과 찬양을 통해 계속적으로 선포된 것이 임마누엘, God with us 였습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것은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와 동행하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시고 확증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완전하고 온전한 구원의 능력을 의심치 않도록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창세기부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은 언약으로 보증되었으며 증거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연약함과 죄성으로 그것이 점점 희미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심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짐이나 저주로서의 개념이 아니라 참신이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동행하고 있음을 경험하고 잊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어지는 10절에서 28절의 말씀은 그 열심의 예를 보여줍니다. 번성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문화명령을 수행해가는 것이 주를 위한 열심이며, 다른 신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것이 또한 그 열심입니다. 절기를 지킴으로 시시때때로 우리의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열심이며, 어떠한 일이있어도 일년에 3번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열심입니다. 분명 여기에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마음이 없다면 이것은 짐이고, 힘듦이며 귀찮은 것에 불가한 것입니다. 혹여나 그러한 마음이 드신다면 24절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방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내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

하나님을 뵈려고 열심을 낼때 그 누구도 우리의 땅을 못가져간다고 하나님이 약속해주고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향해 열심을 내라, 수고를 하여라, 최선을 다해라, 헌신하여라… 이러한 말들이 결국 오늘의 나, 지금의 나를 위해 주시는 은혜라는 말입니다. 손해처럼보일지 모르나 결국은 나의 것을 지키고 더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간의 범죄이후로 우리와 하신 언약은 함께 그리고 같이 이루어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임마누엘의 주님은 우리와 동행하시기 위해 이땅에 오셨으며,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죄악의 결과를 감당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완전한 답을 가지고 계신 주님이, 그것을 우리와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수고와 열심과 헌신을 통해 예수님의 답을 같이 소유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삶을 통해 매순간 순간 동행하시는 주님을 잊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실때, 이 수고의 삶이, 이 헌신과 열심의 삶이 나의 기쁨이 되며, 나의 복이되는 삶이 되도록 먼저 예수님을 경험하고 만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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