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출애굽기 29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Dec 1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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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주님 주실 화평(찬송가 327장)

말씀 : 출애굽기 29:1~46


오늘 읽은 출애굽기 29장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위임하는 장면에 대한 기록입니다. 제사장과 제사, 이 모든 것이 솔직히 지금 우리의 삶과 너무 먼것이 사실입니다. 더이상 제사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사를 드리지도 않게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말씀을 읽을때 우리에게 아주 먼 말씀, 혹은 예전에는 그랬구나 정도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신약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오늘의 말씀은 여전히 유효하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제사장의 특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5절에 이와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더이상 제사장이라는 특별한 사람이 필요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제사장이라는 외형은 없어졌지만, 제사장의 의미와 내용은 성도인 우리에게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이 말씀은 우리에게 있어야할 제사장으로서의 모습, 그 원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말씀을 묵상하실때, 어떤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로 받지 말고, 예수님의 은혜로 제사장의 특권을 소유한 나의 이야기로 받고 해석하기를 바랍니다.

먼저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의 중제자로 서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거룩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이 거룩을 가질수 없기에 하나님이 자세히 그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1절을 보시면 제사장이 거룩하게 되기 위해 어린 수소하나와 흠없는 숫양 둘을 택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3번의 제사를 드림으로 제사장위임식을 진행하게 하십니다.

그 첫번째 제사가 10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제사장으로 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죄를 속죄하는 속죄제사입니다. 죄를 없애는 의식, 죄를 떠나는 의식이 가장 처음에 이루어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신약을 사는 우리 역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앞에 나아갈때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이 죄의 해결이며, 그러기에 죄의 해결자이신 예수님이 가장 중요한 믿음의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숫양 한마리로 번제를 드립니다. 15절에서 18절의 말씀입니다. 번제는 제물 전체를 태우는 제사로 하나님께 완전히 드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제사입니다. 속죄와 회개로 정결하게된 제사장이 이제 그 깨끗함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겠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제사입니다. 18절을 보시면 이 제사가 향기로운 냄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 말을 히브리어에서 직역하면 ‘즐거운 향기’, ‘편안한 향기’가 됩니다. 즉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되어 죄로 인한 진노가 멈추고 하나님과 우리가 평화로운 상태, 신학적인 용어로는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회개이후에 드리는 우리의 전적인 헌신에 대한 결단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평안하고 즐거운 영적제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장벽이 사라지고 이제 완전한 하나가 되었다는 영적인 선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기까지가 십자가의 은혜라고 착각합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가진 영적 제사장으로서의 특권이라고 여깁니다. 하나님과의 담이 사라지고 정결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하나님께 전심을 다하는 것이 전부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우리의 하루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 열심을 다해도 여전히 삶의 문제는 존재합니다. 그러니 점점 내가 영적인 제사장이 되었다는 의식은 희미해지고, 누군가 특별한 사람만이 영적인 제사장일것이다 라고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기도 하고, 자꾸만 자꾸만 구약적인 제사장, 즉 내눈에 거룩해보이고 특별해보이는 영적인 능력자를 찾으려고 만 합니다.

하지만 아직 제사장 위임식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가지 제사가 더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상대적으로 이 마지막 제사에 더 많은 분량을 기록함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것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 마지막 제사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형태적으로는 두번째 제사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내용은 많이 차이가 납니다. 먼저 제물의 피를 제사장에게 바릅니다. 이것은 하나님게 대한 제사장의 전적인 순종과 헌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게다가 피를 귓부리에 발랐다는 것은 하나님께 제사장이 예속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보면 주종관계로 보이지만 21절의 말씀을 보면 주종관계로 해석하기 보다는 구별됨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께 예속되었고, 구별되었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신 다음에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을 제사장들의 분깃으로 허락하십니다. 26절에서 28절의 말씀을 보시면 요제와 거제물로 여호와께 드리라고 하십니다. 이 두제사는 방법적인 의미로 요제는 흔들어서 드리는 제사, 거제는 높이 들었다가 내리는 제사입니다. 그리고 이 두제사는 모두 하나님께 드린 이 제물이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셨고 그 댓가로 다시금 우리에게 복을 주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의 실제적인 은혜와 복을 상징하는 제사의 형태라는 말입니다.

즉 이 세번째 제사는 하나님께 나아간 제사장의 헌신과 구별을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것과 그 헌신과 구별의 삶을 살아낼수 있는 실제적인 힘을 주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제사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함 속에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그 삶을 살아내려는 모든 헌신과 구별됨을 주님이 기억하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아낼수 있는 실제적인 힘과 능력을 더해주신다는 약속을 이미 해주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삶의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여길까요? 37절의 말씀에 중요한 힌트가 담겨있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너는 이레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라 그리하면 지극히 거룩한 제단이 되리니 제단에 접축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리라.”

“이레동안” 7일동안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7은 완전수로서 하나님의 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슨말이냐면 하나님의 때까지 꾸준히 거룩과 헌신의 삶을 살아내라는 말입니다. 내 마음대로 제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늦거나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7일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8절 이후로 하나님은 아침과 저녁에 하나님을 만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42절의 말씀을 읽어보실까요?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매일 매일 우리를 만나시려는 주님과 교제할때, 하나님의 때인 7일은 속히오게됩니다. 삶에서 제사장으로서 누려야할 은혜들을 마음껏 누릴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영적제사장인 우리를 통해 거룩과 구별됨과 헌신이 주는 기쁨과 평안이 세상에 전해지게 됩니다.

아무쪼록 오늘 하루와, 우리의 모든 평생의 삶을 영적제사장으로서 가진 이 복을 누리고 전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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