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출애굽기 24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Dec 1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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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아 하나님의 은혜로(찬송가 310장)

말씀 : 출애굽기 24:1~18


오늘 묵상하는 출애굽기 24장의 말씀은 시내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시는 하나님에 대한 것으로, 19장에서 부터 시작한 말씀의 이상적인 결론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19장에서는 하나님의 임재가 그려지고 20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을 말씀하시며, 백성들은 그 원칙에 응답합니다. 그리고 21장에서 23장은 모세에게 기본적인 원칙들이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여러경우를 예로 들어 말해주십니다.

이와같이 십계명으로 시작하여 우리의 삶의 기본적인 원칙과 적용을 말해주시는 이유는 19장에서 이미 말씀하신것처럼 독수리 날개로 이스라엘을 업어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하시고, 제사장 나라가 되게하며,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율법이라 부르는 이 하나님의 법이 절대로 이스라엘 백성의 짐이되거나, 힘들게 하거나,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하나님의 법에 한 목소리로 순종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 3절의 말씀입니다.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한소리로 응답한다는 말은 만장일치로 응답하였다는 말입니다. 모두가 다 이 하나님의 법을 받는데 이의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4절이하의 말씀처럼 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준행하겠다는 피의 언약을 하나님과 맺습니다. 먼저 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함으로 다시한번 말씀을 되새깁니다. 그리고 이른 아침에 산아래에 제단을 쌓고 12기둥을 세웁니다. 구약시대에 제단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12기둥은 열두지파들, 즉 계약의 당사자인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위해 아침부터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피를 담아 반은 제단에, 반은 언약의 대상자인 백성들에게 뿌립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이제 피를 나눈 유기적인 생명체로 연합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행동입니다. 이 언약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선포되었다는 말이며, 이는 곳 19장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제사장의 나라로 올려졌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일을 이른 아침부터 신속히 진행합니다.

한번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맺고 있는 언약의 대상이 하나님이십니다. 기적의 방법으로 지금 이스라엘을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장자가 되었음이 증거되는 순간입니다. 종살이의 종식과 유리 방황하는 나그네 인생의 끝이 선포되는 시간입니다. 이 기쁨을 지금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리고 있는 겁니다. 

이 기쁨속에 모세와 아른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이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시는 장면이 9절에서 11절에 등장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완전하게 회복이 되었음이 선포되는 상징적인 식사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하는 공동의 식사, 이것은 신약의 성만찬의 예표로 여겨질 정도로 큰 은혜의 시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됨과, 관계의 회복이 기쁨과 감격과 영광속에 선포되며,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모든 것을 기쁨으로 은혜로 누리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따로 시내산으로 부르신 그때에 말입니다. 함께 17절과 18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일 사십야를 산에 있으니라.”

40일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 시내산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모세가 올라간 그곳이 이스라엘 백성의 눈에는 맹렬한 불로 보입니다. 40일간 하나님의 대리자인 모세를 못만나는데, 하나님은 맹렬한 불로 보였다는 이 말에 주의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복선이 되어 32장 이후의 금송아지 사건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분명 하나님은 맹렬한 불의 모습으로 보였으나, 이것이 두려움으로 여겨질 수는 없는 상황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보며 공포를 경험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32장에서는 모세가 안보이니 불안함을 느끼고 결국에는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신으로 만들어 냅니다. 그 모습을 하나님은 이렇게 진단합니다. 제가 32장 7절과 8절의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재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그 짧은 시간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잊어버리고 자기를 위해서 삽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아이러니 하게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속에 여전히 온전하지 못한 하루 하루를 살았기 때문입니다. 맹렬한 불로 보여지는 하나님을 보는데, 그 불이 자꾸 자기를 해할것 같은겁니다. 왜요? 하나님이 말하는 거룩보다는 악함이 그들에게 더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하루 하루 살아가는데, 점점 맹렬한 불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이 두려워진것입니다.

이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맹렬한 불로 보이기 이전, 이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날개로 품으시고 제사장의 나라로 삼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아래에서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 약속안에서 우리의 삶을 해석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 약속과 그 기쁨을 두려움 때문에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마치 아담이 범죄한 이후 하나님의 음성을 두렵다고 느낀것 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러니 하게도 하나님을 버리는 데까지 나아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혹시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이 무섭고, 멀게 느껴지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엔 내가 너무 악하다고 여기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위해 팔벌려 안아주시는 분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십시요. 그 약속의 증거이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십시요. 그리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의 식탁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언약아래에서 평강과 기쁨과 복을 마음껏 누리는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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