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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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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셨습니다. 하지만 야곱이 이스라엘 되었다고 하루 아침에 사람이 달라지느냐?

 

오늘 자신의 두 다리를 절뚝이며 지팡이를 의지한 채, 형 에서 앞에 나서는 장면에서 독자인 우리는 야곱에 대해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1절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명의 장정을 거느리고~의 어감은 불길해요. 그래서 1절 자식들을 나누었다! 왜냐하면 327절의 나누다!랑 똑같은 말을 써요. , 야곱은 여전히 두려움 가운데 자신만의 계획을 진행하고 있는가? 8절로 22절에서의 두려움의 동기로 다시 그룹을 나눠 에서에게 다가갔는가?

 

다음으로는, 아니면~ 그가 가족을 서열을 따라 배치한 것은 그 당시 예절에 맞게 에서에게 인사시키려는 것인가?

여하튼 형 에서에게 자기가 먼저 나가, 봉신이 군주에게 할 법한 몸을 일곱 번이나 땅에 굽혀 인사하죠. 그렇게 형 에서와의 대화 가운데 한 가지 달라진 야곱의 모습을 볼 수가 있어요.

 

바로 5, 야곱이 에서에게 하는 첫 번째 대답입니다.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이니이다.” 창세기에서 이 말이 열일곱 번 언급이 되는데~ 그 중 삼 분의 일이 32.33장의 야곱의 입을 통해 나옵니다.

 

실상 창세기에서, 축복으로~ 축복하심의~ 축복하다의 어근이 더 흔하게 나와요. 27장을 보더라도 야곱은 축복을 구했던 자였어요. 하지만 오늘 본문 8절을 보더라도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의 축복보다는 은혜를 강조하는 자로 바뀌었죠.

 

그리고, 한글개역판을 보게 되면은, 야곱이 에서에게 10청컨대 내 손에서 이 선물을 받으소서라고 말해요. 그런데 11절에서는 청컨대 내가 당신께 가져온 나의 복을 받으소서라고 말해요.

, 지금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이제 / 아버지 이삭의 복을 나누어 주는 언약의 상속자의 위치로 만들어 가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유쾌한 대화 속에 좀더 열기를 띄며, 자기가 받은 가축 선물에 보답이라도 하듯, 에서가 야곱에게 땅을 제시하죠. 자기와 함께 세일 땅으로 가자.는 거에요. 거절합니다. 13절에 그 이유가 나와 있지만은, 폰 라트와 깔뱅에 의하면~ 종종 속여 왔던 사람으로서의 불신이 여전히 있었다! 에서가 언제 바뀔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15. 종 몇 사람을 붙여준다 해도 혹시나 당할 위협을 염두해 두고 제의를 거졀했고, 14. 한글 개역으로는,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갈 때까지 ~ 굉장히 불확실한 대답으로 형을 따라 안 갈 수도 있음을 피력하죠.

 

~ 세일 땅은 자신이 가야 할 약속의 땅 가나안과는 관련이 없었기에 / 믿음으로 에서의 길과는 반대의 경로를 선택했음은 무리입니다. 왜냐하면 이어 1차로,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지어요. 또 자기 가축을 위해 우릿간을 만들어 체류하기 때문이죠.

 

여기서 숙곳이란, 피난 장소, 오두막이라는 뜻입니다. 여전히 야곱 입장에서는 불안하거죠. 그래서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위한 피난처를 찾습니다. 그렇게 더 나아가 세겜 땅을 백 크시타에 매입함으로 임시로 머물고자 한 것이 아닌 이제는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야곱의 이 삶을 과연 누가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과 묵상 가운데 34장에서 딸 디나의 강간 사건이 터집니다. 특별히 성서의 사건 중 디나의 강간 사건은요. 베두인의 전통과 문화를 통해서 함께 바라봐야 해석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성서 속의 족장들이 살았던 유대 광야와 네게브 광야의 삶 그리고 시나이 반도에 거했던 삶이 지금의 베두인들과 거의 흡사함을 역사적으로 밝혀졌기 때문이죠. 제 본문이 아니니깐 잠깐만 설명하자면,

 

만약 베두인 공동체에 내일 본문처럼 한 여성이 부정하게 됐다면, 이것은 분명 가해자가 이 여인의 남자들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되었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그 어떤 베두인도 관용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합니다.

 

그래서 34장에서 하몰이 / 야곱과 그의 아들들에게 나아와 환영하고 보상의 방법을 구구절절 풀어놓는 거에요. 먼저 분노를 가라앉혀야하잖아요. 동시에 자신들의 약한 인상을 내보여서도 안되는 거죠.

 

하지만, 결국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부족민들을 몰살 시켜요. 이것은 광야의 법칙대로 행한 것 뿐이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유목민으로서 앞으로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마치 모양은 다르지만, 안전을 위해 세겜 땅을 선택한 아버지 야곱의 모습과도 같은 선택이죠.

 

하지만, 야곱이 저주한 아들들은 도리어 야곱 자신보다 가족의 아픔과 상처 앞에 용기 있는 자였습니다. 이 아들들로, 355. 야곱의 가족이 벧엘로 올라가는 과정에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선택한 복수의 길에 대해 야곱이 저주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로 인해 355. 야곱의 가족이 벧엘로 올라가는 과정에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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