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약속의 근거하여
앞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친 모리아산인 여호와 이레는 여호와의 산에서 그것이 보여질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즉, 반드시 하나님께서 직접 번제물을 보여주실 것이다! 그렇게 이 모리아는 아브라함 뿐만이 아닌, 다윗의 성전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시간을 초월해서 함께 만난 곳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모리아는 순종의 산이었어요. 다윗의 모리아, 즉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인구조사 이 후 회개와 은혜의 장소였어요. 그 여호와이레의 산이 실체가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 저와 여러분이 이루지 못할 완전한 순종과 죄의 삯을 대신 갚으사 죽으셨고, 다시 사셨습니다.
이 사건 이후, 창세기의 기록은 급격하게 아브라함의 생애를 마무리해요. 먼저 사라의 사망이 있게 돼죠. 사라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언약적 관점에서 사라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점이죠.
히브리서 11장 11절12절에 근거해, 사라는 나이가 많아 경수가 끊어진 상태였어요. 이는 죽은 자와 같은 상태였다라고 히브리서 기자가 설명하죠. 이 사라에게,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졌죠!
그렇게 이 죽은 자의 몸에서 이삭을 낳았다는 것은? 죽음을 극복한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다는 거에요. 한마디로, 앞으로 누구든지 사라에게 주어진 이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자는 사라와 같이 죽음을 극복한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됨을 의미하는 거에요.
이에,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서 장지(葬地)를 마련하죠. 6절. 헷 족속은 아브라함과 이웃지간이어서 원하는 땅을 매장지로 쓰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원문상, 에브론이 완곡한 표현으로 지금 아브라함에게 밭과 막벨라 굴을 팔 의사가 없다 말하는 겁니다. 다만, 한시적으로 밭과 막벨라 굴을 사라의 매장지로 주겠다는 거에요.
즉 아브라함의 세대가 지나면 그 소유권이 에브론에게로 다시 돌아가는 거죠. 이에 아브라함의 후손이 막벨라 굴을 열조의 매장지로 삼기 위해서는 또 다시 거래할 일이 생기는 거에요.
하지만, 매장지를 굳이 헷 족속에게 비싼 값을 치르고 완전히 사는 과정을 볼 때, 아브라함은 사라의 장사를 단지 죽은 시신을 매장하는 정도로만 보질 않았어요. 마치 매장지를 자신의 소유로 반드시 삼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듯이 행동합니다.
그렇게 헤브론의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은 400세겔에 영원히 매입하죠. 반드시 값을 지불하지 않고서는 약속의 땅에 들어올 수 없음을 얘기나 하듯, 십자가에 은 30세겔에 팔리우신 예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곳에 야곱과 함께 묻히기를 원했어요. 이것은 단순히 약속의 땅에 묻힌다는 의미가 아닌, 이곳에 영원히 속하길 원한다는 히브리 관념에서 비롯된 행위입니다.
49장을 보게 되면은 야곱의 유언이 나오는데~ 아들 요셉이 출세한 애굽에서 묻히기를 원하질 않아요. 그런데 그 아들 요셉은 여호수아 24장, 세겜 땅에 묻히죠.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겜 땅은 야곱이 창세기 48장에서 요셉에게 유산으로 준 땅이에요. 따라서 요셉이 출애굽 후, 세겜 땅에 장사된 것은 그 땅이 요셉의 자손의 기업이 되기 때문에 요셉은 세겜 땅에 묻힌 겁니다.
한마디로,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묘지는 죽은 자를 묻는 장소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그 지파가 영원히 소유하는 땅의 상징적인 의미를 첫 번째로 가지고 있고,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것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던 것이죠.
즉, 오늘 창세기 23장은, 비록 언약을 받은 당사자들이 죽었어도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것을 믿었던 아브라함이 그 땅의 일부를 샀던 것이죠. 즉, 앞으로 하나님께서 그 땅을 약속하신 대로 주실 것을 믿고서 준비한 행위였습니다.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죽었습니다. 이것은 죽음이 아닙니다. 사실 영원한 약속 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죽는 자의 복이며 지금도 주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의 약속이요. 안식입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이 약속이 주는 안식을 알고 하루 하루 그 안식과 약속 안에 거하는 연습하는 복된 화요일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기도제목
1. 자녀의 학업을 위하여
2. 교회의 교육훈련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