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기다림, 인간의 방법을 내려놓다
• 찬송 : 419장(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믿음’의 또다른 언어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전합니다. 믿음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그 어떤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믿음은 실재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자녀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은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었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전합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시간이 점점 흘렀습니다. 한해, 두해,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도, 일들도 발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의 또다른 언어가 바로 기다림을 묵상하게 됩니다. 기다림, 참으로 지난한 믿음의 여정인 것입니다.
사래가 말하다... 아브람이 듣다
1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약속을 주셨는데, 기다림의 시간이 지체가 된 것입니다. 점점 하나님의 약속이 희미해집니다.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사래가 말하기 시작합니다. “여보, 여호와께서 나의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의 여종에게 들어가서 자녀를 얻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주전 19세기에 기록된 리핏-이쉬타르 법전에 보면, ‘창녀가 임신하지 못한 부부를 위해 아이를 낳아준’ 기록이 있습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심심찮게 있었던 일입니다. 사래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자신의 나이도 고려하였고, 마음의 인내도 참을만큼 참은 것입니다. 아브람도 사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사래의 고민도, 눈물도, 괴로움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래의 말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길
아브람도, 사래도 오랜 고민 끝에 결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두 사람의 행동은 믿음에 따른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주의 구약학자인 브루스 왈키는 ‘사래에게는 자신의 상황을 아브람에게 자손을 약속하신 창조주의 능력과 연결하려는 믿음이 없었다’고 평가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는데, 두 사람은 믿음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이 아브람과 동침함으로 임신을 하게 됩니다. 임신 사실을 안 하갈은 사래를 멸시합니다. 자신의 여종에게 멸시를 받자 사래는 분함을 참지 못하고 아브람에게 다가가 분노를 표출합니다. 아브람은 그 마음을 그대로 받습니다. 사래는 남편의 허락을 받고 여종 하갈은 학대합니다. 하갈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집을 떠나 광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길을 선택하자 문제들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아브람과 사래의 관계도, 사래와 하갈의 관계도 점점 어려워집니다.
그러함에도, 그렇지만!
아브람과 사래의 믿음 없음으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람도, 사래도, 그리고 하갈과 이스마엘도 돌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와 연약함도 체휼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믿음이 아닌 인간의 방법으로 행한 일로 인하여 이삭과 이스마엘 지금까지 적대하는 역사를 놓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은 인간의 방법을 내려놓고, 주님의 일하심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비록 더디고 힘겨울지라도 주님의 약속을 의지하며 인내함으로 믿음의 상을 받는 믿음의 나눔과 섬김의 가족이 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 기도제목 ]
1.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인내함으로 기다리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하소서
2. 싱가폴 한인말씀집회(9/24-26)와 강사로 오시는 이찬수 목사님을 붙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