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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예수 앞에 나오면(찬송가 287장)

말씀 : 야고보서 4:1~17


오늘 말씀은 조금 우리를 힘들게 하는 본문으로 여겨집니다. 대표적인 불편함은 3절, 9절, 11절, 14절입니다. 3절은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여길때 그것이 내 욕심때문이다 라는 결론을 내릴수 밖에 없기에 불편하고, 9절은 왜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슬퍼하고 애통하고 울어야만 하는가? 라는 것때문에 불편합니다. 11절은 그렇다면 잘못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괜찮다고 해야 합니까?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합니까? 하는 의구심을 주기에 불편하고 14절은 그렇다며 미래에 대한 계획은 다 쓸모없는 것인지, 요즘 유행하는 욜로의 삶이 그럼 성경적이라는 것인지... 헷갈리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읽으면 쉬운데 어렵습니다. 문장이나 내용은 성경에서 항상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 쉬운데, 그것이 내 삶으로 들어오면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말씀 좀 확실히 정리함으로 야고보가 말하는 이 삶의 모습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깨닫기를 바랍니다.

4장의 말씀 저변에 흐르고 있는 야고보의 주장은 17절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17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야고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몰라서 못하거나 안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대 안하는 것입니다. 이말을 3장의 논리로 풀어보면 한 구멍으로 단물과 쓴물을 낼수 없기 때문에 아는데 안한다는 것은 믿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것 그것이 죄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야고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믿지 않는것은 죄다. 그런데 그 믿음이 확실하면 행동으로 나타난다 입니다.

이 명제 아래 처음에 우리를 불편하게 했던 명제들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과연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욕심때문일까? 하는 것, 3절의 말씀때문에 가진 마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정욕은 단순한 욕심이 아닙니다. 원어의 의미는 쾌락이라는 뜻입니다. 단순한 욕심을 넘어서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운동선수가 승리를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합니다. 그런데 꼭 금메달을 따고 싶어요. 그래서 정말 운동만 합니다. 금메달을 향한 욕심때문에 하는 이 운동.. 이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넘어섭니다. 금메달만 보이기에 근육을 팽창시키고 호르몬을 강화시키는 약물을 먹습니다. 이것이 쾌락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적 기준이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도 인정하지 않는 죄입니다. 야고보는 일반적인 우리의 욕심이 문제다 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하나님이 되는 것, 그 대상이 쾌락이 되는 것 그것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해석이 4절입니다. 세상과 벗하지 말라.. 우리는 이것을 세상을 떠나 사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야고보는 세상과 벗한 것의 수식어로 간음한 여인이라고 말합니다. 즉 간음한여인이 세상과 벗한것이고 이것이 하나님과 원수된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 당시 간음한 여인이라 칭함을 받았던 이들 중, 여사제들이 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을 위해 공적인 창녀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성적인 교제를 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였고 유흥이었습니다. 즉 야고보는 간음이라는 것 자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악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고 즐기는 것을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따르기에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신앙적인 모습이 있어도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야고보의 말 그대로 죄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9절의 불편, 역시 본문을 정확하게 해석하지 않아서 입니다. 슬퍼해라 애통해라 울어라... 웃고 즐거워하지 말아라 이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웃고 즐거워하는 것은 앞서 말한 쾌락의 산물로 해석해야 합니다. 즉 성적인 것이나 세상문화에 빠져 그것을 하나님으로 믿으며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만일에 그렇다면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말입니다. 슬픔, 애통, 울음은 성경 곳곳에서 회개의 증표로 등장하는 단어임을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중독의 증상이 있으면 속히 끊고 돌아오라는 말로 해석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10절의 말씀을 더 보충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좋은데 어떻게 그것을 버립니까? 어떻게 그것을 끊습니까? 손해입니다. 아픔입니다. 이런 마음이 들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앞에서 낮추는 그 모습 주님이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중독을 버릴때 하나님은 다른 은혜로 그것을 채워주셔서 우리를 더 높혀주십니다. 그러니 이러한 주님을 믿고 믿음의 삶을 지금 시작하십시요.

11절에서 형제들 비방하지 말라는 것은 형제를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동일합니다. 실수가 있다고 덮으라는 말이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실수를 바로잡아 다시 온전하게 하는 것이 사랑이지 않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비방하다는 단어는 멸시하다 대적한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즉 야고보의 말은 실수했다고 그 사람을 멸시하거나 생무시하거나 경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의 지체요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랑을 잊지 말라는 말입니다. 무조건 덮는것 그것은 은혜도 아니고 사랑도 아닙니다. 또한 실수를 드러내고 그 실수를 한 지체를 완전히 공동체에서 끊어버리는 것 역시 주님의 바람이 아닙니다. 지체임을 잊지말고 연약한 지체를 다시 강건하게 하여 주는 것, 그것이 예수님을 진짜 믿는 성도들이 일구어 나가야 할 삶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3절 이후의 말씀은 노후대비, 미래 계획, 이런것들이 아무 소용없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리고 실제로 목사님들 중에는 저축을 죄로 여기는 분마저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체워주시는데 왜 인간적인 노력을 하느냐..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이 끝내시면 그것으로 끝이나니 하나님만을 붙들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그 분들은 저축이 우상이고 죄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 말씀을 겉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13절을 보시면 너희 중에 말하기를... 로 시작합니다. 즉 누군가가 “나 내년에 엄청난 돈을 벌어 올꺼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16절과 이어서 보면 이 말이 왜 문제인지 알수 있습니다. 이 말이 단순한 말이 아닌 자랑이에요. 즉 자신을 과시하는 겁니다. 지금 아무것도 없는데, 아주 많은 것처럼 자신을 크게 과시하는 모습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언어로는 사기죠. 하나도 없는데 아주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그래서 그것으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선이겠습니까? 악이겠습니까? 저축이나 노후계획이나, 미래 설계가 비성경적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절대로 오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지금 나를 부풀려서 누군가를 기만하고 그로인해 내가 유익을 얻는 행위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는 다른 것이 아니라 신용을 조심해야 합니다. 신용대출같은 것입니다. 좁게는 신용카드 사용이겠죠. 지금 없는데 앞으로 얻을 것을 가정하고 소비하는 것이 신용카드입니다. 나쁜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내가 될때, 신용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가 나의 가치라고 여길때, 그래서 소비가 급격히 늘어나고 그 소비를 감당하지 못할때, 어떤 일이 발생합니까? 신용불량자가 됩니다. 이것을 모를까요? 아니요 압니다. 그런데 끊지를 못하는 겁니다. 야고보는 그것이 결국 쾌락으로 변해버린 것이며, 그것이 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처럼 야고보는 우리의 실제 삶에서 나타나는 문제속에 진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계속 물어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점검해보기 바랍니다. 욕심을 넘어선 쾌락이 있는지, 끊어야 할 죄가 있음에도 회개하지 않는 것이 있는지, 누군가를 인격적으로 멀리하고 멸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보이지 않는 가치인데 그것으로 나를 자랑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17절의 말씀처럼, 이제 알았으니 멈추거나 결단함을 통하여 죄를 선으로 바꿀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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