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 히브리서 10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Jun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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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찬송가 540장)

말씀 : 히브리서 10:1~39


히브리서 10장의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2가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8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를 원하지도 않으시고 기뻐하지도 않으신다는 것과 26절에서 31절까지의 말씀에서 말하는 것처럼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에 빠지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먼저 히브리서 기자는 1절을 통해 앞선 모든 말씀을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율법은 그림자이며 참형상이 아니다. 그러기에 율법으로는, 해마다 드리는 제사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영원토록 온전하게 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 이 사실은 이미 앞장의 말씀을 통해 명확하게 증명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8절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구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이 그렇게도 강조하신 것이 바로 이 율법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않으신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좀더 확장하면 우리가 지금 드리는 예배나 헌금이나, 회개의 고백을 원하지도 않으시고 기뻐하지도 않으신다고 해석할수도 있는 근거자료가 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식적으로 예배나 헌금이나 회개의 고백이 반드시 있어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친절하게도 이 구절을 올바로 해석할 근거역시 8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는 것은 율법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율법아래에서 온전하여지는 날은 하루입니다. 그 하루의 속죄제사로 1년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것, 기뻐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1년중 하루만 온전해보이는 삶이 아니라 영원토록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아래에서는 이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부분적이며, 제한적인 속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들이 영원토록 완전한 의로움 가운데 이 땅을 살아가기를 바라셨습니다. 창조의 때부터 하나님의 이 마음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10절에서 14절에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완전히 사하여 주시고 영원한 제사를 드려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통해 세우신 새로운 언약이며, 새로운 율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적 사고의 연장으로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보여주신 은혜의 법을 원하시고, 그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의 예배, 우리의 헌신과 헌금, 우리의 회개와 구원함은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모세와 맺으신 첫언약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언약에서 출발한 하나님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언약의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영원한 속죄입니다. 그것이 17절에서 20절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17절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불법을 기억하지 않으시겠다. 18절 그러니 다시는 죄를 위해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 19절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아무나 들어갈수 없는 성소에 들어갈수 있으며, 20절 그곳에 들어감으로 새로운 삶을 얻게된다. 이것이 예수님을 통해 새롭게 우리와 언약하신 언약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또한가지의 문제가 나타납니다. 이 은혜를 받았는데 왜 26절에서 31절에서 말하는 무서운 심판을 이야기하는가? 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수신자들의 상황을 염두해두어야 합니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중 박해로 인한 배교자들이 속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로인해 신앙공동체의 존립에 큰 위기가 생겼습니다. 그럼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 믿음의 길과 믿음없는 이들의 길을 제시함으로 배교가 불러오는 영원한 고통이 어떠한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26절과 31절을 따로 떼어놓으면 예수님을 믿었다가 여러 이유로 믿지 않는 분들은 지옥간다는 명제를 도출할수도 있지만 이어지는 32절부터 39절까지의 말씀을 같이 묵상하면, 승리하는 믿음을 가져야하고 또 가지고 있음을 격려하는 말씀임을 알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위협하여 겁주고 협박하여 강제로 예수님을 믿게하려는 것이 아니라, 믿음있는자는 이렇고, 믿음이 없는 자들은 이렇게 되는데, 여러분들은 끝까지 이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그자체로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는자,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에서 시작하여 영원한 의로움을 가진 성도의 믿음은 어떠할까요? 함께 22절에서 25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 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으로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니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악함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믿음입니다.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소망을 굳게 잡는 것이 믿음입니다. 서로를 돌보고 사랑하고 선행하고 선행을 격려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모이기를 소망하고 그 모임을 권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좀더 정확하게는 이러한 것들이 예수님을 향한 믿음때문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38절과 39절에서 이렇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아무쪼록 이 새벽에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기도의 자리에 나아오신 성도여러분! 모든 율법을 완성하신 살아계신 예수님으로 우리의 믿음이 시작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때문에 악함을 멀리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삶에 드러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럼으로 인하여 믿음으로 살수있음을 세상에 증명하는 우리들, 믿음으로 구원함에 이름을 증거할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