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320장
제목: 환대
갈라디아서의 사도 바울은 이전과는 달리, 다소 격앙된 말투로 편지를 써내려 갑니다. 그리고 13절. 이전 자신이 유대교에 있을 때부터 17절 이하 사도된 자들과의 만남 등 구구절절하게 사도행전 9장과 11장에 나와 있는 이야기를 굳이 꺼냅니다.
아시다시피 사도행전은 예루살렘 교회가 할례 문제를 극복하고 어떻게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의 능력이 전파되는 지를 보여주는 책이에요.
너희 갈라디아의 교회도 그 은혜로 생겨난 곳 인데~~ 또 다시 6절. 다른 복음 즉, 할례 받지 아니하면, 완전한 복음이 아니라는 그 유대교적 박스 안에 또 들어가려느냐? 인 것이죠.
즉, 그 당시 갈라디아 교회 안에는, 잘못된 것을 섞은, 다른 복음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겁니다.
이와 같이 혼란한 너희들의 상황 가운데에, 3절.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만을 빌고 있는 것이죠.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완전하게 죽으셨다! 그리고 성부께서 성자를 부활케 하심으로, 우리의 구주요 첫 열매가 되어 주셨다. 이 은혜의 복음만으로 충분하다는 거에요.
그런데 자꾸 할례와 율법의 조건을 꺼내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8절 저주를 받을지어다!
사실 인간이 변화되는 것은, 단순합니다. 사람은 환대를 받게 되면(복음을 경험하게 되면) 내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 환대를 받은 사람은 불가역적인 변화를 체험하기에 그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질 못해요.
실생활의 예로, 자주 가는 식당에 가서 감사를 자주 표현해보십시오. 아주머니가 당장 반응을 보이지 않을지라도, 시간이 지난 후에 작은 영향력이 나타납니다. 아주머니 안에 갑자기 내가 앉은 테이블을 향한 그리움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거에요.
그 때서부터, 아주머니는 더 이상 같은 사람으로 머물 수 없는 것이죠. 자신도 모르게 우리 테이블을 자주 방문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 환대가 곧 은혜입니다.
사실 이 율법으로는 우리의 생각과 삶을 절대로 고치질 못합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이 율법 지킴으로 또 하나의 자격을 만들었던 겁니다.
율법은 돌판에 쓰여졌던 거에요. 이것이 율법의 무서움이자 한계에요. 율법이 우리 안에 아무리 거해봤자 돌에 쓰여진 죽은 글자처럼 생명력이 있는 것은 아니죠.
율법은 그 자체로 거룩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정죄함이고 결국 사망입니다. 왜냐하면은 우리는 이 법을 지킬만한 능력이 없거든요.
그래서 이 율법을 폐하시고, 복음이 찾아온 겁니다. 즉, 이 복음이라는 것은 내 능력과 내 조건 이전의 문제에요. 이 은혜로 계속해서 채워질 때에,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자로 살아가는 것이죠.
찾지 않았던 우리를 하나님이 찾아오셨고, 내 자격으로는 도저히 누릴 수 없는 하나님 백성다운 삶을 살게 하신 것이 복음입니다.
나는 23절. 박해하던 자였다. 하지만은 이제는 그 은혜로, 도리어 이 복음 전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니 24절. 하나님께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돌리라!
그러니까는,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너희가 어떤 조건이나 자격을 만들려는 그 순간부터, 주인이 둘이 된다는 것이죠.
즉, 하나님 나라의 주인은 오직 한 분인데~ 너희가 그 은혜로 들어왔으면,
그 주인의 사랑에만 이끌려 살아가라는 거에요.
이 사랑의 자유함에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죠. 율법이 구원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닌, 오직 아버지의 은혜와 십자가의 사랑 그리고 성령의 책임만이 너희를 그 나라 백성답게 순종하는 자로 서게 한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율법으로 성도임을 확인하지 마시고, 자유와 사랑 그리고 자랑함으로 하나님 자녀 됨을 확인하고 증거하는 복된 화요일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기도제목
1. 어머니 학교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