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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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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내가 매일 기쁘게(찬송가 191장)

말씀 : 고린도후서 10:1~18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이자 정치철학자로 알려진 마이클센델이 지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이 8년전 출간되었을때 한국사회에 많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한 정의를 다시 생각해볼 관점을 제시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책 제목은 정의란 무엇인가?이지만 원서는 정의로운 행동은 무엇인가?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명제적으로는 정의에 부합되는 일이 있는데 상황과 환경에 따라, 관점에 따라 그것이 정의롭지 않게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예로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온 상이군인에게 어느정도의 상해를 입어야 훈장을 부여할수 있는가?라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부상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그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사람에게 훈장을 수여하면 된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정의로운 행동이 될수 있는가? 라는 의구심은 떨칠수가 없습니다. 더 많이 다쳤지만 전쟁의 공로가 없을 수도 있고, 많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전쟁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센델교수는 정의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의 사람들이 그 정의를 체험하는 공동체적정의를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는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오늘 바울의 주장은 센델교수의 주장과 상당히 닮아있습니다. 당시 고린도교회의 성도중 일부는 바울이 편지를 쓸때의 모습과 실제모습이 다르다고 비아냥 거렸습니다. 10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편지의 내용은 똑부러지고 권위가 있는데, 실제로 만나보면 비굴하고 우유부단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종교적 배경에서는 바울의 편지글처럼 어떤것은 하고, 어떤 것은 하지 말아라 라는 것이 훨씬 더 종교적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특별히 유대인의 율법주의는 그 정도가 상당히 강하고 위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울을 직접만나면 그런 모습이 없는 겁니다. 이건 맞고 이건 틀렸다 라고 딱 지적해주면 되는데 그런것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바울을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바울이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잘보이기 위해 그런것이다 라거나, 그가 제시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라는 생각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바울이 왜 그러한 모습이 있게되었는지를 설명하고 변호하는 말씀입니다. 그런의미에서 1절은 상당히 위트있는 바울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너희와 있을때는 유순하지만 떠나서 편지로 만날때에만 담대한 나 바울이라는 말 자체가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 모습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알게 해주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이렇게 다르게 행동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센델교수가 정의를 바라보는 그 관점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관점을 바울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함께 8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바울이 육신의 삶을 살아가고 때로는 세상의 지혜로 변론하기도 하지만 그의 유일한 목적은 누군가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세우는 데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10장에서 말하는 바울의 자기 변호이고, 더 나아가서 성도의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보면 예수님시대의 바리새인들이 왜 외식하는 자들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는지 이해가 됩니다. 수많은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에 들지 못하는 자들을 정죄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으로 누군가를 세우기 위해 산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무너뜨리고, 스스로는 더 나아보이려고 했기때문에 외식하는 자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결국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온유와 관용을 나타내기 위해 사람을 대면해서 만났을때, 글이나 편지에서는 보여줄수 없는 그 사랑을 표현하려고 유순함을 드러낸것입니다. 그의 유순함이 율법의 정죄와 판단에 얽매여 있는 이들에게 힘을 주고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새롭게 시작할 힘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성품인 온유와 관용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과 세상이 말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품 즉 하나님의 능력을 위해 살아간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온유와 관용의 삶은 교회공동체에도 그대로 영향을 주게 됩니다. 

13절과 14절을 쉬운성경버전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오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바울이 행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릅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즉 바울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자신이 교회의 설립자요, 영적으로 뛰어난 사람임을 나타내려는 것이 아니라, 바울에게 임하시고 함께하셔서 바울의 삶을 변화시켜 놓으신 그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관용이 곧 그리스도의 복음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삶의 모습을 통해 고린도교회와 성도들이 변화의 중심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따라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고린도교회와 성도들이 동일하게 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시 우리에게는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처럼 신앙적인 우월의식이나, 내가 가진 신앙으로 다른이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려는 마음이 혹시 있지는 않으십니까?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이세상에 동요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육신에 속한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힌 자임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법적인 기준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기 보다, 능력이신 하나님을 먼저 바라봄으로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의 성품인 온유와 관용을 먼저 베풀고 나눌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바울의 이 모습이 교회공동체로 확산되어서 교회를 변화하는 시작이 된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성품을 본받고 실천하는 그 모습이 교회를 회복하고, 사회를 온전하게하는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땅에 온전한 모습으로 드러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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