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7장 “데살로니가에서 아덴까지”
찬송가 : 325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사도행전 15-18장은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17장은 그 중간에 들어가 있는 기록입니다. 앞선 16장에서 바울의 전도팀은 유럽의 첫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빌립보에서 전도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옷감장사 루디아가 예수 믿게 되는 열매를 보기도 했지만, 빌립보 감옥에 갇히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바울은 루디아와 형제들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위로한 후에, 데살로니가 지역으로 전도여행을 이어갑니다.
17장 1절 말씀에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후,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갑니다. 당시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자신이 살던 지역마다 회당을 중심으로 자신의 신앙과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모여서 율법을 연구하는 장소적인 의미도 있었지만, 장소적 의미보다 선택받은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 공동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컸습니다. 바울의 전도여행을 살펴볼 때, 그는 항상 이 회당을 중심으로 활동했습니다. 회당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효과적인 전도를 위한 목적도 있지만,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회당이라는 상징적이 장소에서 선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3절에 바울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는 복음, 우리가 붙잡고 살아가야 할 분이 예수 메시아라는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4절에서 아이러니하게 그곳에 있던 소수의 헬라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고, 5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깡패들을 동원해서 바울과 그 일행을 찾아내려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당을 중심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시기하는 모습이 있다면 오늘 깡패들을 통원해 바울을 잡으려 했던 유대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회당이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위치, 내가 가진 것, 내가 이룬 것, 반대로 내가 실패한 것, 나의 형편과 처지가 나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복음에 반응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저와 여러분의 존재 가치를,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의 불량 유대인들을 피해서 베뢰아 지역으로 갑니다. 10절에 보면 그들은 어김없이 회당에 갑니다. 그런데 베뢰아 지역의 유대인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과 다른점이 보입니다. 11절에 베뢰아 사람들은 『너그러워서』라고 그들의 성품을 표현합니다. 이 단어는 마음이 넓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유연하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에 『간절한 마음』으로 반응합니다. 그들은 간절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찾았고, 말씀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3절에 보면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쫓아와 바울의 일행을 괴롭히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참으로 끈질깁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반응하지 않았을 때, 그 인생은 끝까지 그 외적인 것들에 반응하며 비교하고, 또한 그것에 끌려 다니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처럼 복음으로 살아가다 보면, 데살로니가 같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고, 베뢰아 같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반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울이 끝까지 복음의 삶을 살아낼 수 있었던 비결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의 끈질긴 괴롭힘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아테네까지 복음을 전하러 갈 수 있었습니다. 16절에 바울은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 이어 아테네로 전도여행을 이어갑니다. 17절에 그는 여전히 회당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말로 싸우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논리적인 공격에도 바울은 의연하게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하며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34절에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는 자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하루는 데살로니가에서 아테네까지 이어지는 복음의 여정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된 하루를 사람과 환경에 반응하고 비교하며 살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반응하며, 이 믿음을 붙잡고 살아가시는 은혜가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18년 가정교회 지도자 수련회 (1월 26일(금)-27일(토))를 위해서
18기 제자훈련을 위해서, 18년도 상반기 교육 훈련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