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굴곡있는 삶 가운데 섭리
찬송가: 368장
사도행전 1장은 예수님의 승천 후 부재! 그리고 2장은 보이지 않았던 예수님이 이제는 성령으로! 3장은 그 성령이 임한 자들의 첫 발걸음입니다. 그러나 오늘 4장은, 성령이 임한 자의 첫 실패가 나와요.
1절. 사두개인과 제사장들 그리고 성전 맡은 자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중심으로 사도들을 붙잡죠 이유는, 2절. 부활이 있다는 거에요. 사두개인들은 본래 부활이 없다 주장하는 현실주의자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종교로 지금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으니 자꾸 부활을 꺼내는 제자들이 싫은 겁니다.
영원한 나라가 있다고 가르치는 제자들의 입을 틀어 막고 싶은 것이죠.
이에 성령충만한 제자들은 하나 둘씩 잡혀 죽고요, 6장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집사 중 7장 스데반의 죽음으로 그들 역시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집니다. 그 뒤 연이어 사도 바울이 등장하지만은, 결국 그도 28장 감옥에서 오고가는 몇 사람 이외에는 복음을 전하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데,
여전히 우리가 이 사도행전이 끝날 때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약속은 1장 8절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즉,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세상의 힘과 핍박으로~ 너희들의 삶이 지금 무의미하게 흩어지고 무너질 때가 있지만은, 내가 너희를 내 증인으로서 지금도 역사하고 있음을 절대 잊지 말라는 것이죠.
성경 전체가 이 이야기이에요. 보십시오. 하나님은 죽여 마땅한 살인자 다윗을 의롭다 했습니다. 아내를 팔아버린 아브라함을 의롭다 했습니다. 배신한 베드로를 의롭다 했구요. 며느리와 동침한 유다를 통해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방주의 은혜를 경험한 노아가 술에 취해 자기를 흉본 아들 인생 전체를 저주했으나 여전히 노아의 의로움과 완전함을 문제 삼질 않으셨어요. 욥기 끝까지 한탄하며 원망했던 욥을 칭찬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을 때 엎드려 웃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입니다.
한 마디로, 지금 성령 충만함으로 걸어가는 제자들의 첫 발걸음부터 마지막까지 제동을 거는 이유는 12절. 다른 이로써는 절대 구원 받을 그 어떠한 길도 열어놓지 않겠다 하시는 하나님의 선포인 것이죠.
즉, 내가 진행하고 있는 이 구원의 역사에 대한 전적인 이해와 동의를 가지라는 거에요. 너희들의 길과는 다르다! 세상의 기준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아무리 죽음이 너희를 삼키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부활이 죽음을 삼킨다는 거에요. 내 계획대로 된다 이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입니다.
천국이란 바로 이 하나님의 원리를 믿음으로 받아 누리는 자들의 모임이에요.
즉, 세상에 이 두 발을 딛고 살아지만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전적인 동의와 이해가 있어, 세상의 가치관을 점차 벗어버리는 삶으로 기대하라는 것이죠.
그 하늘나라의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자들의 삶이 바로 23절의 이하의 말씀과 36절. 구브로 사람 바나바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바나바는 후에~~ 회심한 바울을 도와 진짜 사도로 성장하도록 힘쓴 자였어요. 예를 들어,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를 만나 회심하고 난 후 예루살렘 교회에 발을 붙이고자 했을 때 아무도 바울을 믿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다들 배척하는 상황에서 오직 바나바만이 바울의 편을 들어줍니다. 여기서 만약 바나바가 없었다면, 아마 바울은 홀로 사역하다가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겠죠. 한 마디로, 바나바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바울의 진정성을 보는 눈이 있었어요.
이처럼 살인자 바울의 진정성을 볼 줄 아는 능력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전적인 이해와 동의에서 비롯되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니 오늘 하루도 누구를 만나든 또한 어떤 상황을 대하든 바나바가 후에 흙속에 묻힌 바울을 발견했듯이 우리에게도 그 눈과 귀가 있어 상대를 대할 때 날카롭지만 그 누구든 함부로 내치지 않고 모든 상황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과 동의를 구하는 복된 화요일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기도제목
1. 육신의 병 가운데 있는 성도들 가정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