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 주 없이 살 수없네 (292장)
사도행전 3장 “반전”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는 어떤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걸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태어났을 때 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4장 22절을 보면 이 사람의 나이가 약 40세쯤 되었다고 나옵니다. 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성전 문에서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는 일이지요. 그날도 이 사람은 성전 문에서 돈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성전에 오는 두 사람을 봅니다. 그 두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이에요. 베드로와 요한이 갑자기 이 앉은뱅이를 부릅니다. 이 앉은뱅이는 이 두 사람이 돈을 주려고 불렀나보다 하고 생각했지요. 5절입니다. (5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돈은 이 앉은뱅이에게 꼭 필요합니다. 돈이 있어야 음식도 사 먹을 수 있지요. 돈이 있어야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이 자신에게 돈을 줄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6절)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이 앉은뱅이는 약간의 돈을 줄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실제로 약간의 돈은 앉은뱅이에게 아주 귀한 거에요. 그러나 이 앉은뱅이의 인생을 바꿀 수는 없어요. 그 돈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는 있지만, 앉은뱅이의 인생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이 앉은뱅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걷는 것이죠.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이 앉은뱅이를 걷게 했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약간의 돈을 주었다면, 이 앉은뱅이는 잠시 행복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 돈을 쓰고나면 또다시 돈을 구걸해야 합니다.
걷지 못하던 이 사람은 걷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나서 이 앉은뱅이가 한 행동이 있습니다. (8절)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이 앉은뱅이가 걷게 되자 처음으로 무엇을 했어요? 하나님을 찬양했어요. 예전에는 성전 밖에서 구걸하던 사람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단순히 이 사람을 걷게 하는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계획은 이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것이 없는 분이시죠. 그리고 못하는 것이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싶은 것을 다 줄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가진 것이 많다고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께 감사할 때 우리는 행복합니다.
앉은뱅이가 걸으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람들은 크게 놀랐습니다. 당연하죠. 걷지 못해서 매일같이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인데,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하자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발단인 베드로와 요한에게로 몰려왔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사람들을 향해 설교를 하기 시작합니다. 12절입니다. (행 3:12, 개정)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우리를 주목하지 마라. 우리의 능력으로 이 사람을 고친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어떤 분에 대해서 설교를 시작합니다. 누구에 대한 설교일까요? 바로 예수님에 대한 설교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불과 몇 달전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말합니다. 그 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우리에게 오셨다. 그런데 너희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분을 살리시고 영화롭게 하셨다. 이 앉은뱅이가 걷게 된 것도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낫게 된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14-15절입니다. (행 3:14-15, 개정)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몰랐다고해도 그 죄악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은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다시 살아나사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죄를 지은 입장에서는 끔찍한 소식입니다. 이제 남은 건 끔찍한 심판 밖에 없지요? 그런데 베드로는 놀라운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행 3:19, 개정)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 회개하고 돌아와라 라고 선포합니다. 이 말씀이 도저히 납득이 안 가요. 이 사랑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가 않습니다. 죽어 마땅한 자들을 이렇게 까지 사랑하는 이유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복을 주겠다고 말씀합니다. 25-26절입니다. (행 3:25-26, 개정) 『[25]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심판 받아 마땅한 자들에게 오히려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한량없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순복할 수 밖에 없는 사랑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도행전 3장은 몇 푼의 돈을 기대했던 앉은뱅이의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예, 몇 푼의 돈은 우리의 순간순간을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과 영혼의 근원적인 필요를 채울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죄인인 우리들을 용서하시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기쁨은 행복을 얻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순복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제목
1. 새해 첫 주일 예배
2. 청년부 리더세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