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 예수는 나의 힘이요 (93장)
요한복음 21장 “다시”
오늘 본문에는 깊은 좌절감에 빠져있는 한 인물이 나옵니다.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인합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베드로는 예수님을 다시 만납니다. 그러나 여전히 절망하고 좌절해 있었습니다. 왜요? 이미 실패했거든요. 자신의 한계를 경험했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 자포자기하고 있었습니다. 3절입니다. (요 21:3, 개정)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성경은 글로 써진 책이지만, 베드로의 표정이 충분히 상상이 갑니다.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물고기 마저 안 잡힙니다. 왠지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져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때 한 낯선 사람이 지나가다가 말을 건넵니다. 6절입니다. (요 21:6, 개정)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순간과 오버랩되지요? 이 낯선 사람이 누구인지는 이제 제자들이 눈치를 챘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아마도 요한이겠죠? 요한이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예수님이시다. 제자들이 잡은 물고기와 함께 해변으로 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계시네요.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아침을 드십니다. 예수님과 베드로 그리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하는 이 아침식사의 분위기가 어땠을까요? 분위기가 참 묘했을 것 같아요. 베드로는 죄송한 마음한 많았겠죠. 또한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미움이 가득했겠죠.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꾸짖기는커녕 아침까지 준비해서 베드로를 먹이십니다. 베드로는 한입 한입 아침을 먹으며 마음이 많이 복잡하고 어려웠을 겁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여기에다가 뭐라고 대답을 해야 되죠? 아~ 그럼요. 예수님을 위해 목숨마저 버릴 정도로 예수님을 사랑하지요. 이렇게 쉽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이미 그렇게 대답했잖아요. 그리고 처절하게 실패잖아요. 그것이 불과 몇 일전의 일이에요. 자기 자신에 대한 원망과 한탄, 상처가 있어요.
예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베드로의 실패, 상처, 아픔, 연약함 다 알고 계시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그 부분을 정확히 보시고 질문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시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실패하고 얼룩진 베드로의 삶입니다. 그 모든 것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비록 깨어진 자의 고백이라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고백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사명을 부여 하십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같은 지도자가 됩니다. 이렇게 깨지고 얼룩진 베드로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나갑니다. 만약 예수님과의 이 만남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베드로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고기를 잡다가 일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탁월하고 위대한 사람들을 보며 목표도 생기고 동기부여도 받습니다. 그러나 한없이 연약한 자신을 보면서 절망하기도 합니다. 2017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계획 세우셨나요? 사소한 계획을 세우면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지요. 거창하고 대단한 계획을 세워야 사람들로부터 주목도 받고 응원도 받습니다. 그런데 그 계획을 잘 이루어지던가요?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좌절할 때가 더 많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기억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절망과 좌절을 예수님께서 아십니다. 우리의 상한 마음을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상한 마음을 품고 받아주십니다. 그리고 상한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고 새 사명을 주십니다.
기도제목
1. 특별새벽기도회를 위해
2. 송구영신예배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