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누가복음 10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Nov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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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장

찬송가 453장


오늘 본문 말씀은 칠십인 전도대의 파송과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본문을 단락별로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1-12절은 칠십인의 파송을 13절-16절은 주를 영접하지 않은 자들의 운명에 대하여 17절-20절은 칠십인이 돌아오는 장면을

21-24절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인하여 기뻐하심을 25-28절은 율법사의 질문을 29-37절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그리고 마지막 38-42절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예수님께서는 1절부터 12절까지 칠십인을 세워 하나님 나라와 회개할 것에 대해 선포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들을 보내신 것은 마치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리떼에게 보내진 양은 목자가 없이는 그 자리에서 잡아 먹히고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양들은 목자되신 예수를 따라 가며 그분의 음성만을 듣고 쫓아갑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리하셨듯이 결국 세상이라고 하는 이리에게 먹힘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일시적인 최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시적이라는 말은 그러한 죽음은 잠깐이요 그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기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70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샬롬을 선언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외치는 샬롬을 받을 합당한 자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샬롬이 임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외친 샬롬은 자신들에게 돌아갈 것임을 말씀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얻는 행위인 것입니다.


또한 복음을 거절하고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는 동네들이 받게 될 심판은 그들이 하찮게 여겼던 정도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황불의 심판을 받았던 소돔과 같은 아니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심판이 찾아올 것임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거부한 것은 사실 제자들이 아닌 예수님의 뜻을 저버린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17절 부터 20절까지는 70인이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보고를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보고의 내용은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자기들에게 항복하였다는 보고입니다. 이처럼 예수의 이름은 권능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참 신앙이 없이 예수의 이름을 주문처럼 함부로 부르다가 오히려 악귀들린 사람으로부터 해를 입었던 사실을 감안해 볼 때에 예수의 이름을 통한 기적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의 신앙의 태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귀신을 내쫓음으로 기뻐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관심은 영혼의 구원에 있음을 제자들에게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2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기도하시고, 한 영혼이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한 자들에게 나타내심에 감사를 표현하십니다. 이처럼 구원을 얻는 믿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달음박질이나 열심으로서가 아니라 선물로서 주어지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을 가지고 누가복음 10장은 율법사의 질문에 대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의 구원을 얻는 믿음에 대하여 계속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서 등장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어려움에 처한 거반 죽은 자를 살리는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되자 라는 단순히 율법적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레위인과 제사장은 율법을 잘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거반 죽은 자를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습니다. 그 둘은 모두 율법을 잘 알고 있는 자들이었고 그 자체로 율법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옛계명으로 정죄의 기능은 있지만 그 자체로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의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자비를 베푼 선한 사마리아인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합니다. 율법을 지켜냄으로 의를 쌓으려 했던 율법사에게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인됨을 인식하고 그 삯으로 거반 죽은 자 같은 우리들을 살릴 방법은 바로 예수님 당신 자신밖에는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우리가 그러한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자 라는 메시지 정도로만 받는 다면 예수님의 의도를 한참이나 벗어난 꼴이 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마치시고 곧바로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로 초점을 돌려 우리들의 실생활 가운데에서 앞서 보여주신 이야기에 대한 적용을 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알려주십니다.  그 이야기는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마리아를 두둔하는 것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 일로 근심하는 마르다를 다독이시며 말씀을 듣고만 앉아 있는 마리아가 좋은 일을 택하였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르다 입정에서는 굉장히 억울하고 섭섭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까지 한 이유는 영혼의 일에 대해 더욱 큰 관심이 있음을 말씀하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섬김의 활동에 대한 한찮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순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며, 더욱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집중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말씀을 듣는 것을 칭찬하신 이유는 바로 그것이야 말로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0장이 강조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조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누가복음 10장을 성경 말씀 두 구절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로마서 9장 16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을이니라


갈라디아서 2장 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할 육체가 없느니라 


함께 기도

-우리의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오늘 의지하여 승리의 삶을 살게 하소서

-틴즈부 단기선교를 위하여(말레이시아 말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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