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장
찬송가 228장
21장에 이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하나님 나라는 어떠한 나라인지를 말씀하세요.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풉니다. 그러나 청함을 받은 모든 자들이 이를 다 사양합니다. 어떤 자는 밭에 나가봐야 한다! 다른 자는, 사업하러 간다. 그리고 남은 자들은 그 소식 전한 종들을 잡아 죽입니다. 이에 임금이 7절. 군대를 동원하여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지요.
이에 왕이 다시 사람을 모으는데, 10절. ‘악한 자나 선한 자’ 상관없이 데려와 자리를 채웁니다. 즉, 잔치 자리는 초청 받은 자들의 조건과 응함으로 가는 곳이 아닌, 오직 임금의 뜻에 의한 하나님 나라의 잔치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때 예복을 입히지요. 그런데 11절. 예복을 입지 않은 자가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자기 옷을 입은 거지요. 그런데 이것이 무슨 큰 잘못이기에, 어두운 곳에 내 던져집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 임금이 준비한 예복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생기지요.
이스라엘에서는 두 번에 걸쳐 혼인이 이루어진다 합니다. 첫 번째가 정혼입니다. 합방하지는 않지만 법적인 혼인 관계가 성립이 되지요. 이 정혼 후, 신부는 원래 자기가 살던 집에 지내는데, 이때서부터 신랑이 결혼 생활을 시작할 준비를 한다 합니다.
그렇게, 신랑의 아버지는 때가 되면, 신랑을 신부 집으로 보내어 신부를 데려옵니다. 이것이 두 번째 혼인 잔치에요. 여기에서, 신랑을 신부 집으로 보내는 시기는, 전적으로 신랑 아버지의 권한이에요. 그 날과 시간은 아버지만 압니다. 마치, 예수님이 이 땅에 두 번째 오실 때도 하나님 아버지만 아시는 것처럼요.
이 때, 자신을 준비한 신부에게 세마포 옷이 허락되는데요. 이 세마포 옷은 구약 시대, 제사장이 제사를 드릴 때 입었던 옷입니다. 제사 때 땀을 흘려서는 안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제사 행위는 구원의 은혜를 예표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인간의 어떠한 노력이나 행위를 상징하는 땀이 허락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의 세마포 옷은 구원의 은혜를 상징하지요. 그런데 요한계시록 19장 말씀에 의하여 이 세마포 옷은 예복입니다.
즉, 오늘 임금의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 입은 이 예복, 세마포 옷은 은혜로만 입는 옷입니다. 자기 옷을 입어서는 아니 됩니다. 오직 땀을 흘려서는 안 되는 세마포와 예복만을 입어야 그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옳은 행실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입혀주신 그 옷만을 입어야 참여할 수 있는 잔치입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다름 아닌, 너희는 지금 누구를 왕으로 삼고 사느냐의 질문인 거에요.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 보여준, 동전에는 가이사의 형상과 신의 아들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동전이었습니다.
가이사를 너희 주인으로 믿고 산다면 가이사에게 자신을 바치며 살 것이요, 하나님이 주인이라면 너희를 하나님께 드리며 살 것이다!는 겁니다. 여기서 드리며 산다는 것은, 앞선 비유의 맥락처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입혀주신 그 예복 만을 의지하여 살아간다는 겁니다.
즉, 세금의 문제가 아닌 너의 인생이 지금 누구를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느냐를 물으신 겁니다.
계속하여,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이 질문하지요. 이들의 질문에 예수님의 대답이 32절 재미가 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이 사두개인들에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부르시고 언약하셨어요. 그리고 그 언약하신 바를 이루어 내시기 위해. 모세를 부르시죠. 이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것을 약 4백년이 지나 이루어 내신 사건입니다. 출애굽 시키십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동안, 그 약속을 받았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죽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약속이 살아있으니, 약속을 받은 그들도 살아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저와 성도님은 언젠가는 죽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해요.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루어 내십니다. 그러니 그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저와 성도님도 영원히 살아있는 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는 자는 살아 있어도 죽은 자이고 죽어도 죽은 자가 되는 거에요. 오직,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자들만이 살아도 죽어도 산자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다윗이 43절. 성령에 충만하여 외친 고백, 가이사가 우리 인생의 왕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주 되시며, 그 언약 안에 있는 자임을 기뻐하시고 감사해 하시는 복된 화요일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