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하나님의 독생자(찬송가 171장)
말씀 : 마태복음 28장
오늘 읽은 말씀은 새로운 날의 시작이라 볼 수 있는 예수님의 부활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시면 안식일이 다 지나고 한식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3절과 14절에서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이 헛것이라는 사도바울의 강력한 주장처럼 부활은 신약의 성도들에게 있어 믿음의 근간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전한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이 그 핵심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마태복음 28장은 마태복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많이 읽혀졌을 본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부활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그 구조를 보시면 1절에서 10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막달라마리와 다른 마리아의 이야기이고, 11절에서 15절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감추고 숨기고 음해하려했던 로마군인과 장로들의 이야기이며, 16절에서 마지막 20절의 말씀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의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이 구조를 잘 보시면 마태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마태는 의도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당시사회에서는 큰 영향력이 없는 여인의 이야기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도 의도적으로 숨기려고 거짓말을 하는 권력자들을 비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비교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이들은 몸이 움직이고,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려는 이들은 말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8절을 보시면 그여자들이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 하였다고 말합니다. 부활의 메시지를 들으니 몸이 반응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이는 부활의 소식을 들을때 몸이 먼저 달려나간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부활을 거부하는 이들은 무엇을 합니까? 말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도둑맞았다는 거짓말을 지어냅니다. 그리고 이 말 역시 유대인사회에 널리 퍼집니다. 15절을 보시면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몸이 움직이기보다는 말이 전달되는 것이 더 빠릅니다. 그것이 이당시에는 뉴스였고, 정보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리시고 회복하신 새로운 나라는 다릅니다. 몸이 움직이기를 원하십니다. 더디더라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십니다. 동일한 부활을 보고 동일한 부활을 경험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몸을 움직여 달려나갔지만, 그렇지 않은이들은 자리에 앉아서 말을 만들며, 소문을 만들며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그것이 부활을 대하는 2가지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선택하라고 하십니까?
함께 19절과 20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님의 답은 가라입니다. 제자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세례를 베출고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몸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경험하고 한달음으로 제자들에게 그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갔던 여인들처럼, 주님의 나라는 우리의 몸을 움직여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효율적입니다. 이것은 느립니다. 이 방법은 많은 결실을 맺을 수 없는 방법입니다. 모여서 힘을 키우는 것, 그것이 더 효과적이고 더 파워풀해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으십니다. 가라는 것입니다. 가게 하시기 위해 초대교회 예루살렘에는 박해가 있었습니다. 더 멀리 흩으시기 위해 주님은 머물러 정착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흩으시고 흩으셔서 정말 말씀하신 땅끝에 이르기까지 가라고 하십니다. 왜입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부활의 그 능력과 승리의 깃발을 가지고 세상에 승전보를 울리면서 나아가기를 바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복음이 우리의 마음에 살아있으면 우리는 움직이게 됩니다. 우리는 복음때문에 성령의 삶을 살아내게 됩니다. 세상 곳곳으로 가서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을 증거하게 됩니다. 그런 삶을 기쁨으로 당당하게 살아내게 됩니다. 그것이 복음을 가진 성도의 삶입니다.
오늘 이 능력을 다시금 회복하기 바랍니다. 더이상 숨어서 말로만 그럴듯한 신앙생활을 하는 시늉을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에 새겨진 그 복음을 온 몸으로 드러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활의 증인들이 경험한 평안을 누리고, 그 평안을 시작으로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제자됨을 드러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