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마태복음 20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Sep 2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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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마태복음 20장 – 묵상과 기도


찬송가 : 407 장 –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마태복음 20장 “예수님 따라”


예수님은 천국,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포도원의 비유로 말씀하시죠. 포도는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농작물 중 하나였습니다. 포도원에 대한 비유도 그 당시 사람들이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비유의 소재였죠. 


1절에 예수님은 천국이 품꾼을 얻고자 하는 포도원의 주인 같다고 하였습니다. 상황은 이러합니다. 주인이 이른 아침에 나가서 품꾼들을 모으며 한 데나리온씩 품삯을 주기로 약속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그 당시 하루 노동 품삯이었죠. 그리고 제삼시, 오늘날의 시간으로 오전 9시 경, 주인은 또 품꾼들을 부르러 나갑니다. 그런데 또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죠. 주인은 그들에게 상당한 품삯을 약속하고 데려갑니다. 그리고 제육시와 제구시, 오늘날의 12시와 오후 3시에도 그와 같이 합니다. 그 때 당시에는 오후 6시, 제 12시에 주로 하루 노동 일과가 마감하는데, 한시간 전인 11시, 즉 오후 5시에 나가서 또 놀고 있는 사람들을 포도원으로 데려갑니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하루 품삯을 받을 때가 되었습니다. 주인은 나중에 온 사람부터 주기로 하였죠. 그래서 오후 5시에 온 사람부터 품삯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그들에게 한 데나리온씩 주었죠. 먼저 온 자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은 더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죠. 그런데 그들 모두 한 데나리온씩 받았습니다. 당연히 먼저 온 자들이 주인을 원망하며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따졌죠. 사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비합리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원망하는 품꾼들에게 ‘내가 당신들에게 약속한 것은 한 데나리온이다. 약속한 것을 주었다. 당신의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내 것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라고 냉정하게 얘기합니다. 이렇게 천국은 먼저 믿은 자들이 오랜 시간 수고하거나, 나중 믿은 자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 이 땅에서 수고하거나, 받은 것은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천국에서 받는 상급이 차이가 있냐 없냐는 사람들마다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 구원을 받는 것이 사실 가장 큰 것인데, 그것은 먼저 믿는 자들이나 나중 믿는 자들이나 차이가 없음을 말씀하고 계시죠.


17절에서 19절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언급하시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을 이땅의 이스라엘을 다른 나라로부터 해방시킬 왕으로 오해하고 있는 자들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시는 참된 구원사역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은 천국과 구원사역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20절부터는 한 어머니가 등장하죠. 이 어머니는 세베대의 아내입니다. 그녀의 아들들은 야고보와 요한이었죠.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였고, 예수님의 사촌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자신의 아들 둘이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하죠. 쉽게 말해서, 나중에 예수님이 나라를 세우실 때에, 제일 높은 두 자리에 자신의 아들들을 세워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들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에서 나오는, 어찌보면 당연한 부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머니도, 이 어머니의 부탁을 듣고 분노하는 다른 열명의 제자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죠. 22절에 너희들은 그 자리가 갖는 의미, 감당해야할 것들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23절에 그 자리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24절부터 정말 하나님 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거든, 종이 되라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높은 자리는 다른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들이 높은 자라고 말씀하시죠. 



우리는 신앙생활의 년수가 늘어가면서 봉사도 많이 하고 섬김도 많이 하면서, ‘이정도의 대우는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보면, 교회에 나아가 하나님께 실망하는 경우가 더러 있죠. 내가 기대하는 만큼 나를 향한 대우가 시원찮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이미 약속받은 것, 이미 은혜를 다 받았습니다. 이른 아침에 들어와서 하루 종일 일한 일꾼이 주인에게 왜 우리에게 같은 것을 주느냐, 다른 말로 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적게 주느냐 따져도, 돌아오는 대답은 이미 약속한 것을 주었을 뿐이다. 라는 답만 들을 수 있죠. 


우리의 신앙의 여정은 걸어온 길만큼 더 큰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섬기는 삶입니다. 더욱 낮아지는 삶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가신 예수님께서도 28절에 자신은 섬김을 받으려 한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결국 그 섬김을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보여주신다고 말씀하셨죠.


예수님은 그러하셨습니다. 29절에서 34절까지 맹인들이 예수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을 때, 예수님은 그들을 귀찮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고쳐줄테니 떠나라고 그만 소리치라고 혼내지도 않으셨습니다. 34절에 그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친히 손을 내밀어 그들의 보이지 않는 눈, 그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한 원인인 아픔의 눈을 어루만지셨습니다. 그렇게 그들을 고쳐주셨죠. 



날이 갈수록 예수님 닮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 사랑한다고 하면서 대우 받으려 하고, 높아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섬기려하고 낮아지려 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때가 있죠. ‘이것만큼은 해줘야하는 것 아닌가? 내가 이정도하는데 최소한 이정도는 나에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예수님은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의 자존심, 우리의 기준 다 내려놓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 생명, 이미 허락하신 구원의 약속을 붙잡고 오늘도 섬김의 하루를 이어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 겸손하게 예수님 닮아가는 하루 되기를
- 섬기는 삶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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