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 마태복음14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Sep 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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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4장 설교

찬송가 407(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세례요한의 순교와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


단락구분

1-2절 예수에 대한 헤롯의 그릇된 이해

3-12절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한 세례요한

13-21절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으로 오천명을 먹이시다

22-33절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시다

34-36절 많은 사람들이 병고침을 받다

 

본장의 구성상의 특징은 1절부터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소문으로 시작되어 마지막 절에 이르기까지 그의 능력과 이적을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태는 이적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며 묘사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지의 주관자이신 참 왕이시자 참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1절에서 분봉왕 헤롯이 등장합니다. 그는 여러 악행으로 말미암아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인물로서 그는 이복 형제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불법적으로 취해서 결혼하였습니다. 그러한 점에 대해 세례요한은 그를 책망하였고 세례 요한은 투옥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살로메의 요청을 받아 세례 요한은 목베임을 당하여 순교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헤롯은 예수님에 대해 불안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간교한 계책을 세우다 예수께로부터 여우라 불리우게 됩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희롱하였으며 빌라도와 편이 되어 예수를 대적했던 인물로 성경은 그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헤롯의 반응에 대해 묵상해보기를 원합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의 말을 들은 후 그를 죽이려고 하였지만 5절 말씀과 같이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여 그를 죽이지 못하고 투옥하기만 했던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 요한은 6 20절에서 헤롯이 요한을 죽이지 못한 이유에 대해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음이러라'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즉 그는 우유부단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아내가 된 헤로디아의 시킴을 듣고 세례요한을 죽게 만들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실 길을 예비하러 온 세례 요한의 죽음은 바로 이렇게 진행된 것입니다. 인류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전하러 오는 선지자는 지금껏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이 흔한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어 당신의 뜻을 전하러 보냄을 받은 수많은 선지자들이 죽음을 당하였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세지는 무엇인가요? 우리의 뜻이 관철되지 않거나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다를 때 우리는 너무나도 고집스레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기도 하고 모른척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없이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의 귀를 닫고 하나님의 뜻을 이미 알고도 그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몸부림침의 결과는 바로 하나님의 메신저를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 뿐만 아니라 인류는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 마저도 십자가에 죽이고 맙니다. 이것이 인간의 무지요 인간의 약함을 아시는 주님의 한없는 사랑과 지혜의 궁극입니다.

 

오병이어 사건

오병이어 사건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본연의 욕구인 배고픔에 대해 전현 무시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를 더욱 간절히 소망하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14절에서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말씀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인간적 품성을 알 수 있습니다.

 

물위를 걸으신 사건

또한 우리는 22절부터 33절을 통해 예수님의 또다른 이적을 보게 됩니다. 바로 물위를 걷는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바라보며 제자들은 무어라 말합니까?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3차원의 관점을 가집니다. 즉 눈에 보여지는 것과 경험된 것으로만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반응의 변화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령이라'(26) 에서 '주님이시거든'(28) 그리고 마지막 반응은 무엇인가요? 바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33) 라는 반응입니다. 인간은 참 자의적입니다. 보여지는대로 믿는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제자들과 무리들로 하여금 보여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친절하신 세심한 배려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게네사렛 병자 고침 사건

본 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마지막 이적은 병자들을 고치시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고치셨다는 사실입니다. 보통 우리는 예수님의 치유 사역이 실제 사건이었던 것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신 사역의 기록을 볼 때의 우리의 반응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나와 내 주변 이웃들의 병을 위해서 낫기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누가복음 20:13-14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하나님은 연약하고 무지한 우리들을 위해서 지난 수천년의 역사 동안 하나님의 메신저인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물들수밖에 없는 무지한 인류는 그들을 무참히 죽이거나 박해하였습니다.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 요한도 헤롯왕의 칼에 의해 무참하게 죽임 당하였고 결국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자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지만 그 마저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인간의 지혜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인류를 향한 선물이었습니다. 보고 경험함으로 믿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약함을 아시고 우리 가운데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으로 인한 기적의 행사는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이심에 대한 나타내심이었습니다. 그로인해 우리는 보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살아가는 삶 가운데에서 우리의 연약을 솔직히 하나님께 아룀으로 하나님의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고 보여주시며 역사하시는 작은 기적이 있는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함께 기도

존대받는 것을 기대하기 보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작은 기적들의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상식처럼 여겨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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