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장 <예수님의 시험>
찬송가 342장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후 40일을 금식하신 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고 첫 사역을 시작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을 중점적으로 함께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단락구분
1-2절 예수님께서 40일
금식을 시작하시다
3-11절 예수님이 시험 받으시다
12-16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사야 예언의 성취
17절 예수님이 최초로 천국복음에 대한 선포
18-22절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시다
23-25절 예수님이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하시며 이적을 행하시다
예수님의 시험에 대한 이야기
1절은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시험'은 '유혹'하다는 의미의 시험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한 마귀의 유혹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을 시험하였고, 또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을 또한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귀는 계속해서 인류에게 시험한다는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보여 줍니다. 인간을 유혹하는 것은 그의 본능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첫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마귀의 유혹을 이기시기 위하여 40일간 금식하셨고,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습니다. 그는 인간의 몸으로 40일을 금식하셨기에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굶주리을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인간의 몸을 입어 시험을 받으나 그 시험을 능히 이기시는 모습을 우리로 하여금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아래의 시험의 내용들은 예수님만이 승리하실 수 있는 시험임과 동시에 우리가 생활 가운데에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시험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인간의 노력으로서는 도무지 감당하거나 견뎌내거나 극복할 수 있는 종류의 시험이 아니면서 늘 우리 가운데 있는 시험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은 어떠한
시험이었을까요?
시험 첫번째는 '돌덩이가 떡덩이가 되게 하라'라는 시험입니다. 예수님은 돌덩이를 떡덩이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인간이시기에 극심한 배고픔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께 대하여 돌덩이가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은 굶주림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먹을 것이 있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도 알고 사단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시험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시험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예수님을 쫓을 수 없는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그들은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았다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 20절에서 베드로와 안드레의 모습을 성경에서 보면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쫓으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22절에서는 아버지와 함께 있던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를 쫓으니라" 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만약 자신들의 생계에 대한 염려가 있었다면 곧 배와 그물과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쫓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단은 단지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는 것을 보고 싶어서 예수님이 기적행하는 것을 남용하게 하려고 시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원천적인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생존 본능에 대한 시험, 즉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에 대한 시험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면 이러한 사단의 궤계를 아주 쉽게 간파하시고 계심을 우리는 알 수 있게 됩니다.
4절 말씀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말씀합니다.
즉 우리 인간 생명을 유지 하는 진짜 근원은 사실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먹을 것은 완전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즉 말씀이 먼저냐 떡이
먼저냐 라는 질문 앞에 우리는 사실 떡이 먼저인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그러한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원초적 시험 앞에 무릎꿇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번째 시험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고 유혹합니다. 사단은 말씀을 가지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 인간 보다 더 말씀을 빠삭하게 압니다. 그래서 구약의 시편
기자의 고백인 91편 11,12절을 인용하여 그대로 되는지를
보이라는 것입니다. 신천지도 말씀 몇구절을 인용하여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진리로 넘어뜨립니다. 일반 성도들보다 더 많은 구절을 암송하고 있고 익히고 있기에 말씀을 잘 모르는 많은 성도들을 거짓된 진리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고 하나님께 대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하나님과 말씀이신 예수님 자체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지요.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말씀을 인용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해내어 자신이 스스로 영광을 차지합니다. 그것을 사단 마귀가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라는
요구와 유혹 앞에 예수님은 단 한 마디 말씀 한구절로 유혹을 이겨내시는 장면을 우리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7절에서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시험3 높은
산 시험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8-9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말씀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대한 세번째 모독이자 시험이었습니다.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자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마치 이 세상을 자신이 주무르고 있다는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 뿐만 아니라 예수님 이전의 모든 인류가 죄의 영향권아래 놓여진 것을 자신의 공로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세상을 주무르고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것이 마귀라고 스스로 착각하며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히 자신을 높여 세우고 자신을 경배하라고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이 얼마나 오만한 존재인지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하나님 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것 마냥 행동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욥기서 1장 12절을 통해 사탄과 하나님의 관계를 우리들로 하여금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하나님이 사단에게 권한을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사단도 자기 멋대로 할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더욱 높아지고 싶고, 더 명예로운 일들을 찾습니다. 그러한 인간 본연의 죄성을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아시고 그러한 유혹에서 이겨내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가지 시험을 모두 마치시고 마귀의 모든 유혹을 이기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시험에서 이기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자제력과 의지로는 모든 사단의 시험을 능히 이겨낼 수 없지만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일어나는 영적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에 달려 있는 하나님과 공중권세 잡은 마귀의 싸움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온갖 시험에서 능히 이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심을 잊지 않고 예수 이름을 의지하여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는
오늘 하루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함께 기도
삶의 순간 순간에서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