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94장)
마태복음 1장 “임마누엘”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초점이 맞춰져서 쓰여진 책입니다. 유대인들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강한 자부심이 있던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자존심 강한 사람들의 상황이 어땠을까요? 조금 비굴했어요.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죠. 원래 자존심 강할수록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면 힘들어하죠. 그러나 이 유대인들에게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잖아.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무엇이라고 약속하셨습니까? 구원자를 보내주겠다. 메시아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메시아를 유대인들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1절입니다. (마 1:1, 개정)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그리스도는 메시아의 헬라어입니다. 메시아와 그리스도는 같은 뜻입니다. 메시아는 히브리어이고, 그리스도는 헬라어이지요.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다고 선포하며 마태복음이 시작합니다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다섯 명의 이방 여인들의 이름이 올라가 있습니다. 다말은 가나안 여인이었고요. 라합은 여리고, 룻은 모압 출신입니다. 우리야가 헷사람 임을 감안하면 다윗이 취했던 우리야의 아내도 헷사람이었을 겁니다. 모두가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방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모두 비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혈통에 들어가 있습니다. 당시 문화에서는 여자에게는 상속권이 없었고요. 족보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있는 족보에 남자와 여자의 장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장벽 역시나 무너져 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대로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단지 유대인의 왕으로서만 오셨을까요? 아니요. 그분께서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이름조차도 거론될 수 없는 이방 여인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유대인들을 위해서만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유대인의 왕뿐만 아니라 모두의 왕으로서, 그리고 우리의 왕으로서 오셨습니다. 약속대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18절을 볼까요? (마 1:18, 개정)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를 합니다. 마리아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했지요. 여기에서 말하는 약혼은 우리가 말하는 약혼과는 조금 다릅니다. 유대사회에서 약혼, 예전 성경에서는 정혼이라고 번역했는데요. 우리가 말하는 약혼보다 훨씬 더 강한 법적 구속력을 갖습니다. 쉽게 말해서 법적으로 부부입니다. 그러나 결혼할 때까지 함께 살지 않았고요. 따라서 육체적 관계도 금지되어 있었죠. 이 정혼은 오로지 이혼이나 죽음에 의해서만 끝납니다. 만약에 여자가 부정한 것으로 드러나면, 구약시대에는 돌로 쳐죽이도록 했고요. 신약시대에는 이혼하도록 되어있었지요.
요셉은 의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조용히 이혼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찾아옵니다. 그리고는 마리아가 부정한 관계를 통해서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했고, 그 녀가 잉태한 아이는 바로 구원자 ‘예수’시다라고 설명합니다. 21절입니다. (마 1:21, 개정)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러자 요셉은 마리아와 결혼하고 살지요.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 혹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상당히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처럼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수 세기 후에 예수님께서 그것을 성취하러 오셨습니다. 기독교는 근사한 도덕이나 철학이 아닙니다.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기독교에 도덕이 없고 철학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도덕이나 철학 이전에 실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은 몸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왜 오셨을까요? 그 분의 이름처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기도 제목
1. 주일예배를 위해서
2. 교사세미나(전교인 말씀사경회)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