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 스가랴 13장 – 묵상과 기도
찬송가 : 438 장 – 내 영혼이 은총입어
스가랴 13장 “샘이 열릴 것이다.”
스가랴 13장은 12장부터 14장에 이르는 종말의 예언 중 일부분입니다. 13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절부터 6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예언과 그 구체적인 성취를 다루고 있고, 7절부터 마지막 9절까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할 연단과 회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절에 ‘그 날에’ 그 날은 여호와의 날,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입니다. 약 2,000년 전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구약의 예언이 어느 정도 성취되었지만, 완전한 성취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이루어질 것이죠. 그 날에는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리게 됩니다. 죄와 더러움은 보통 구분하기 보다는 하나의 개념으로 이해하지만, 여기서 굳이 두 개의 단어로 표현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총체적인 죄를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총체적인 죄를 용서하시려 샘을 열겠다고 하시죠.
예레미야 2장 13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행한 두가지 악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생수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을 버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수를 얻기 위해서 자신들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그 웅덩이는 물을 저축하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라고 하셨죠.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씻는 샘을 열겠다고 하십니다.
‘샘이 열릴 것이라’는 원어의 문법을 살펴보면, 계속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샘이 열리는 것이 단회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계속해서 열려진다는 것이죠. 닫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샘은 우리의 죄를 씻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그 구속의 은혜를 믿는 자들이 받는 성령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2절부터는 이러한 씻음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상의 이름을 끊어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지 않고 거짓된 말씀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를 쫓아내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는 더러운 귀신들을 쫓아내실 것입니다.
3절에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묘사인데, 거짓 선지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저주스러운지 낳은 부모가 자식을 칼로 찌를 것이라고 합니다. 거짓 선지자를 향한 저주와 진노가 부모의 정도 뛰어남는다는 것이죠. 반대로 부모의 정으로 거짓 예언을 할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4절에서 선지자들도 ‘거짓선지자’들인데, 그들은 예언과 이상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리고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을 입지도 않을 것입니다. 털옷은 쉽게 말해서 선지자들의 유니폼 같은 것이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도, 세례요한 선지자도 털옷을 입고 있었죠. 그래서 거짓선지자들도 거짓된 권위를 세우기 위해 털옷을 입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날에는 그런 털옷도 입지 못할 것이죠.
그들은 스스로 선지자가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5절의 고백은 진실된 고백이라기 보다는 책임을 회피하게 위해 급급한 거짓된 고백입니다. 여기서 농부는 정직하게 땅을 일구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거짓선지자들은 자신들이 거짓선지자의 노릇을 한적인 없는.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 농부라고 합니다.
그리고 6절에 두 팔 사이에 상처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이 상처는 우상숭배자들이 종교의식을 하며 자해를 할 때 생기는 상처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 상처에 대해서 물으면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고 거짓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당당히 말할 수 없는 사회분위기가 된 것이죠.
7절부터는 백성들이 당할 연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을 칼에게 명령하셔서, 목자를 치고 양들을 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목자되신 예수님, 그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자 제자들은 일시적으로 흩어졌었죠. 여기서 ‘드리운다’라는 표현은 ‘돌아오다’라는 원어적 의미를 담고 있는 동사가 섞여있어써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8절에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남을 것이라고 합니다. 삼분의 이는 어떤 사람들이고, 삼분의 일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일단 이 숫자는 문자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많은 자들이 망하게 되고, 남은 자들이 있다는 것이죠. 9절과 함께 생각해서, 그 남은 자들이 연단을 받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고난 가운데 시험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연단이죠. 우리가 보통 생각할 때, 인내가 있어야 연단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연단을 통해서 인내가 생기는 것이죠. 인내는 연단의 열매입니다. 그렇게 연단을 견디는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후에 이스라엘 백성과 약속하셨던 그 약속,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라는 약속을 회복시킴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고, 우리는 하나님을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거짓 속에 살아갑니다. 무엇인 진실인지, 거짓인지도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거짓은 더 진실처럼 위장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속삭입니다. 이런 세상 가운데 진실을 아는 것도 큰 은혜이지요. 우리는 진실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진실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할 길을 사모해야 합니다.
진리를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삶은 핍박을 받을 수도 있고,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냥 내가 원하는대로 편히 살려는 삶보다 고될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야하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주시고, 그 길에 순종하게 해달라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알려주시는 올바른 길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똑바로 걸어 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시는 목사님들과 교회 리더들에게 지혜와 명철을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