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스가랴 10장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Aug 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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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 저 장미꽃 위의 이슬(442)

스가랴 10봄비가 올 때에

 

 

1절을 보시면,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합니다. 이 말은 실은, 유대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가슴 아픈 말이지요. 그 당시 이방인들은, 구름을 일게 하면서 비를 관리하는 풍요의 신을 믿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도 흉년이 들면, 풍요의 신을 생각했기에 하나님이 그러지 말라 그러시는 겁니다.

 

또한 2. 드라빔들은, 복을 빌거나 점을 치는데 사용되었던 가정의 수호신 정도인데, 이것을 이스라엘이 의존하게끔 만든 목자에 대한 하나님의 한탄이요. 후회입니다.

화가 나셨는지. 3절 이하 하나님이 직접 나섭니다. 숫염소로 상징되는 백성을 잘못 인도하는 자를 심판하실 것, 또한 직접 유다 족속을 전쟁의 준마같게 하신다 합니다.

 

그리고 4. 모퉁잇돌. 말뚝. 싸우는 활. 권세 잡은 자가 모두 그에게서 나와 대적들을 친히 밟으신다 약속하십니다. 아시다시피, 위의 표징은 모두 메시아이신 예수님에 의하여 모두 성취 되었고 지금도 되고 있지요.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5절의 말과 그 탄 자들을 부끄럽게 하리라와 10절의 애굽 땅에서 돌아오게 하며 그리고 11절 내가 그들이 고난의 바다를 지나갈 때의 출애굽 모티브를 사용함으로 제 2의 출애굽이 일어날 것임을 함께 예언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포로자의 신분으로, 이 예언을 듣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돌아갈 자신들의 고향. 땅을 생각했을 겁니다.

 

저는, 특별히 땅이 주는 의미는 크다 생각합니다. 저의 부모님께서 아무 연고 없는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무이리라는 곳에 7년 전 자리를 잡으셨어요. 제가 집에 관한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음에도, 무슨 말씀만 하시면 문 목사~~ 나중에 목회 끝내고 와서 편히 살라 하시며 이 집은 문 목사꺼야~ 라 하십니다. 대단치 않은 시골 집이 얼마나 되겠어요?

 

하지만, 제 마음 같아선. 그 집과 대지가 남아 있다면요. 후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도 늘 거기에 계실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부모님이랑 돼지감자 캐던 날, 추운 겨울 제가 아침에 나가서 연탄 갈까봐 새벽에 몰래 일어나셔서 연탄 갈고 오셨던 아버지. 고추와 깻잎이 많이 달렸다고 좋아하셨던 어머니 뒷모습. 마루에서 대 자로 뻗어 티비 보던 한 여름밤. 틀니 다 빼시고 수다 떨던 안방 이불속 부모님 모습.

 

그 집과 땅의 의미를 알기에 엄마의 품처럼 때론 맘이 짠하고 허전함이 클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땅을 디딤돌로 제 삶에 감사하며, 아빠 엄마를 기억하며 살아갈 힘이 생기겠지요.

 

분명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하셨는데, 굳이 땅으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이유가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촛불로 밝혀진 창문보다 더 깊고, 더 신비하고, 더 눈부신 것은 없듯이 이 땅을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추억과 사랑을 기억해 내는 것은 이제부터 이스라엘의 책임입니다.

 

이스라엘이 처해있는 환경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정황은 비슷하다 봅니다. 8절로 12. 휘파람을 부는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자기 백성을 모으시는 약속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을 의지하여 견고케 하신다는 하나님의 그 약속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집니다. 이제 그 하나님이 누구시며, 우리에게 약속한 예수님의 복음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는 우리의 책임과 생각과 고민의 영역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라는 그 자체가 하늘에 신세 지고 사는 삶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늘에 신세를 지고 내가 살아가고 있구나를. 더 많이 깨닫고, 감사할 줄 아는 것..

 

내 삶 지금 있는 그대로가 무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구나를 인정하고 산다면 그것이 바로 봄비가 올 때에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를 기억하고 구하는 삶입니다.

 

포로자의 신분이었던 이스라엘에게 회복은 이미 주어졌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신다 하는 약속이 이미 주어졌습니다. 이제 그 회복과 약속을 내 삶 속에 누릴 수 있고 없고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 책임은 단순합니다. 자격없이 부름 받아 하나님의 것으로만 채워지는 우리의 인생을 즐거워하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신세 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처지를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고 기뻐할 수 있는 복된 화요일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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