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1장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에스겔 21장은 남유다에 대한 심판 예언 중 주전 591년 5월 10일에 주어진 계시를 다루는 20장 1절 부터 23장 49절 까지의 기사의 연속 부분입니다. 1-2절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향하여 그 얼굴을 예루살렘과 성소를 향하게 하고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예언하도록 명하신 사실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3-7절은 칼을 집에서 빼어 심판을 시작하실 것에 대한 예언과 백성들 앞에서 탄식하며 다가올 재앙을 경고케 하신 사실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8-17절은 칼의 날카로움과 빛남을 이야기 하며 에스겔에게 부르짖으며 넓적다리와 손뼉을 치며 재앙을 경고할 것을 명하신 사실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문은 유다에 하나님의 심판의 철저함과 가혹함을 강조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18절에서 27절 까지는 칼의 침략 경로가 부각된 비유 예언과 에스겔에게 칼 즉 심판의 도구인 바벨론의 침략을 보도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서 사용하실 칼의 실체가 바로 바벨론 군대임이 드러나고 있으며, 그러한 바벨론 군대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유다가 치욕을 당할 것이며 몰락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28절에서 32절은 바벨론을 통한 유다 심판을 예언하는 칼의 비유에 대한 기록으로서 바벨론의 칼에 의한 암몬의 멸절에 대한 예언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1. 성도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있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재합니다(3-4절) 3절을 보면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 지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4절에서 한 번 더 반복됩니다. 이 말씀은 결국 이스라엘 땅에서 의인과 악인을 끊는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시행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중에서 악인 뿐만 아니라 의인들도 끊어질 것이라고 한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분이란 사실은 의인과 악인을 함께 심판하시지 않는 분임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에서 의인과 악인을 함께 끊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절대 공의로운 분이신 하나님께서 죄 없는 의인들까지 악인과 동일한 심판의 칼에 희생시키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무죄한 자들을 악인들과 함께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는 야호와께서 죄인들을 향하여 휘두르시는 칼에 의인들도 고난을 당할 수는 있습니다. 또한 반대로 오히려 형통한 삶을 살고 무죄한 의인들이 거꾸로 억울한 고난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인이라고해서 절대로 심판의 영향을 받지 않고, 죄인은 반드시 심판을 당한다는 단순한 논리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섣부른 판단이 하나님을 때로는 오해하고 원망하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새로운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새로운 이스라엘로 교회의 일원이 된 우리 성도들 각자 역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성도들 중 누가 악을 행하여 심판을 받게 되면 악을 행하지 않은 다른 성도들에게도 심판의 영향력이 미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지체의식을 가지고 서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른 성도의 영혼의 상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하며 누가 악을 행하는 것을 보면 책망하여 악에서 떠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체 중 누군가가 악을 행하는 것을 보거나 행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악을 행한 당사자는 물론 자기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임하게 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 각자는 물론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 있지만, 이와 동시에 물론 한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받을까 두려워하라 갈 6:1 2. 하나님은 스스로 높이는 자를 낮추고 스스로 낮추는 자를 높이십니다(26절) 26절을 보면 “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관을 제거하며 왕관을 벗길지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관은 대제사장이 쓰던 관을 말합니다. 그리고 왕관은 물론 왕의 면류관을 가리킵니다. 결국 관과 왕관은 신분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관을 제하고 왕관을 벗긴다는 것은 그들을 낮추어 비천하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절 후반부에서 하나님께서는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분명하게 드러내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추시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추어 신분의 역전 현상이 일어나게 해야만 만족하시는 심술 궃은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교만해져 있으면 겸손하게 만드시며, 또한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높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시드기야 왕을 향해 당신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바로 바벨론의 지배에 복종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를 핍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교만한 시드기야와 대제사장을 낮추기로 하신 것입니다. 결국 시드기야 왕과 대 제사장 스라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 함락될 당시에 체포되어 관과 왕관을 벗기운 채 바벨론 왕 앞으로 끌려가 죽거나 눈이 뽑히고 바벨론 왕 앞으로 끌려가 죽거나 눈이 뽑히고 포로로 끌려 가야 했습니다. 모든 인류 중에 가장 낮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가장 낮은 곳 누추한 마굿간에서 나셨고, 하나님의 본체이심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한 줌의 재로 변할 하찮은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낮은 자리로 임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시어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세상에서 때로 낮아지지만 훗날 하나님 나라에서 그와 같이 높여주실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두 가지 교훈을 살펴보았습니다. 1. 성도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있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재합니다
2. 하나님은 스스로 높이는 자를 낮추고 스스로 낮추는 자를 높이십니다 오늘 성도님들의 하루가 하나님 앞에 단독자 그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세워줄 수 있는 귀한 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하기 1.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나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는 지체는 없는지 돌아봅니다. 2. 오늘 하루도 주님이 원하시는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