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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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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 에스겔 11장 1절-25절 말씀

찬송가: 380장(나의 생명 되신 주)


오늘 말씀은 에스겔서 11장 말씀입니다. 

1절-4절까지는 성전 동문에서 주어진 거짓 평안을 유포하는 이십 오인의 고관들을 대항하는 예언을 담고 있고 

5절-12절까지는 성전 동문에서 주어진 거짓 평안을 유포하는 고관들을 대항하여 선포할 이스라엘 심판 경고의 내용을

13절에서는 블라댜의 급사와 에스겔의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위한 호소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4절부터 21절까지는 이스라엘의 회복 약속의 예언의 말씀을 

22절부터 25절은 여호와의 영광이 감람산으로 이동하는 내용과 에스겔이 본 환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주전 593년 6월 5일에 에스겔은 우상 숭배로 더럽혀진 성전에 대한 환상을 에스겔 8장에서부터 오늘 말씀 11장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로 하여금 성전 동문의 거짓말로 안전을 유포하는 25인을 대항하는 예언을 선포하도록 명하십니다. 25라는 숫자는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태양신 숭배 의식을 거행하고 있던 숫자와 같았습니다. 태양신 숭배의식을 거행하던 사람들은 제사장들이었고 25인은 고관들로서 정치지도자들이었습니다. 정치와 종교의 모든 분야가 철저하게 타락하여 하나님을 대항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3절에서 정치지도자들은 집을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아니하니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고 말함으로 예루살렘의 안전을 주장하였습니다. ‘집을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아니한즉’ 이란 말은 1,2차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그곳에서 신속한 회복을 기대하며 집도 짓지 아니하고 불안정한 삶을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스라엘의 회복은 오랜 기간이 경과한 후에 이루어질 일이므로 집을 짓고 안정적인 삶을 살 것을 가르친 예레미야의 권고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가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는 말(3절)은 단단한 가마가 고기를 보호하듯이 견고한 예루살렘이 자신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여 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다 거짓 예언이었습니다. 거짓 예언을 하였던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5절을 통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다 아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생각을 다 아십니다. 우리의 심령 깊숙한 곳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다 꿰뚤어 보신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를 가지고 그 가치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고 판단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생각이라고 해서 함부로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그 마음을 품은 것 자체로 합당한 보응과 신원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에 우리가 품은 생각을 다 아신다는 것이 부담이거나 두려움이 되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에게 위안과 감사가 되십니까? 우리 안에 무엇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아무리 오해받고 미움을 당하더라도 악한 마음이 아닌 선한 마음을 품고 있다면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안이 됩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악을 품고 있는 겉으로 선량해 보이도록 포장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꿰뚤어 보신다는 사실은 부담스럽고 깨름직한 일일 것입니다.


시편 말씀 66:18-19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다 아시고 우리를 신원하시고 그 마음에 상응하는 보응을 주시는 분이신 줄을 믿으시는 사랑하는 모든 나눔과섬김의 성도님들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25인의 고관들을 향하여 ‘너희가 이 성읍에서 많이 죽여 거리를 시체로 채웠도다’ 라고 질타하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 고관들의 도덕적인 악행을 고발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고관들이 자신들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강포를 행하며 많은 사람들을 죽인  사실을 고발한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유다 말기의 타락상을 염두에 둘 때에 이는 충분히 가능한 해석입니다. 실제로 유다의 타락한 고관들은 억울하게 사형을 선고하기도 했고 재판 절차를 수행하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백성들을 학살하는 폭정이 자행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결과로 인하여 많은 백성들이 죽음에 이르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에스겔 당시 하나님의 예루살렘을 향한 뜻은 바벨론에 항거하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의 지배에 복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지배라는 징계를 통하여 타락한 유다를 연단하고 정결하게 만드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항거하지 말고 복종할 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거듭하여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유대의 고관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대세의 뜻, 사람들의 염원과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애국심과 항거의 마음은 영웅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뜻대로 공격을 받아 수많은 사람들이 살육 당하였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대세의 뜻이 다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외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은 그 반대의 경우일 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분별력이 정말 많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없습니다. 그로인해 누군가는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또 누군가는 절망과 탄식을 표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 시대와 세대와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조국과 조국의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 땅을 향한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손가락 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다수의 뜻이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소수의 뜻만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시대를 역행하고 대세를 역행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알고 어떠한 댓가를 치루더라도 진리의 방향을 가리키고 외칠 수 있는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같은 마음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또한 새로 뽑힐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도자를 놓고 기도할 때에는 반드시 그 지도자는 사람의 뜻으로 뽑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뽑힐 것이라는 신뢰와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13장 1절 말씀과 같이 권세는 하나님의 뜻으로 나지 않음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로부터의 권세는 바로와 같이 악한 왕이든, 다윗과 같이 선한 왕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시대 가운데 필요한 지도자가 대한민국과 국민들을 위해 반드시 세워질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서있는 삶의 자리가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입니다. 우리를 싱가폴에 부르신 것은 다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임을 신뢰해야 합니다. 24절을 보시면 주의 영이 나를 들어 하나님의 영의 환상 중에 데리고 갈대아에 있는 사로잡힌 자 중에 이르시더니 내가 본 환상이 나를 떠나 올라간지라’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보면 에스겔은 다시 그가 본래 있던 삶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바벨론 텔아빕의 에스겔의 집에서 에스겔에게 임하여 환상중에 그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하여지던 유다 백성들의 우상 숭배와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과 성에서 떠나가시는 것을 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보게 하신 후에 다시 에스겔을 그 본래의 자리로 돌려 보내신 것입니다. 


에스겔이 머물고 있었던 갈대아는 어떤 곳이었습니까? 그곳은 바로 포로의 자리입니다. 고통의 자리이고, 자유가 없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러한 자리를 싫어합니다. 싱가폴이 누군가에게는 행복과 기쁨이 가득한 곳일 수 있지만 또 누군가에는 속박과 고통과 답답함이 있는 곳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있는 곳이 혹 고통이 가득하고 답답함이 가득하다고 하더라도 그곳이 하나님이 부르셨기에 서 있는 자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에스겔은 자유가 없는 포로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고 사명을 온전히 이루어 갔습니다. 갈대아라는 곳에서 백성들이 억압당하고 암울하고 비참한 삶을 살았지만 그곳의 그의 사역의 현장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서있는 곳은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이 보게하시고 듣게 하시고 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하여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한 사명지임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피하고 싶고 부담스럽고 꺼려지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그 일을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주변의 상황에 따라 우리의 사명지를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불일듯 일어나는 그 때에 우리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 이곳이 내 사명지다. 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의 결론

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생각을 다 아십니다.

2. 다수의 뜻이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3. 우리가 서있는 삶의 자리가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입니다.


함께 기도

1. 우리의 마음을 꿰뚫고 살피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코람데오의 삶을 살게 하소서

2.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3. 우리가 속해 있는 곳이 우리의 사명지임을 기억하고 오늘 하루도 나에게 맡겨진 사람들과 공동체 사역과 책임을 다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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