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에스겔 10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Mar 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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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 구주를 생각만 해도(85장)

제목 : 성전을 떠나는 여호와의 영광


에스겔서를 아주 흥미있게 바라보고 좋아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라헬리안무브먼트라는 사교입니다. 톰크루즈가 성도라고 해서 한국에서는 좀더 많이 알려진 사교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은 없고, 미지의 외계생명체이자 아주 뛰어난 과학기술을 가진외계인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구원은 우리가 가진 모든 지식을 가지고 과학기술을 개발하여 외계인을 만나는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그들이 증거로 내세우는 자료가 바로 에스겔서 1장입니다. 에스겔이 그발강에서 본 환상이 UFO를 본 것이라는 해석을 합니다. 실제로 에스겔서 1장 4절과 5절에서 에스겔이 본 환상의 시작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림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쇄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이 말씀을 하늘에 나타난 UFO와 외계인으로 해석을 합니다. 실제로 단어적으로 에스겔을 읽으면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시간나실때 구글에서 에스겔서의 UFO라고 치시면 단어 그대로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있는데, 실제 우리의 상상속 UFO의 이미지와 상당히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묵시문학의 특징과 당시 유대인의 사고,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에스겔서의 말씀을 통해 볼때 1장은 외계인과 UFO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움직이는 천사의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의 생물은 거룩한 하나님을 보좌하는 완전하고 권위있는 이로 묘사됩니다. 네 생물, 네 얼굴, 네 날개, 네개의 바퀴와 같이 유대인들의 관념상 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 4로 이들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과, 이들의 얼굴이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 권위와 능력의 상징인 사람, 사자, 소, 독수리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또한 이 천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즉시로 온전히 수행한다는 이미지로 바퀴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는 이 환상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아갑니다. 선지자나 제사장으로서 해서는 안된다고 여기는 일도 그는 마다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왜냐하면 에스겔은 이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오늘 그 환상을 다시금 이야기합니다. 15절과 20절의 말씀을 보면 지금 다시 생생하게 목도하는 그것이 그발강가에서 보던 생물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아래에 있던 생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 묵시가 그만큼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에스겔이 말하는 묵시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아니 절대로 인정할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시면 오늘 말씀의 부제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으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시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받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4절의 말씀을 보시면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와 성전문지방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9장 3절과 4절 말씀을 보시면 이곳에서 하나님은 가증한 일을 행하는 이스라엘과 그것을 바라보며 탄식하는 자를 구별하십니다. 바로 그곳에 여호와의 영광이 임합니다. 구름이 가득했다, 영화로운 광채가 가득했다는 말역시 여호와의 영광이 그곳에 가득했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7절을 보시면 그룹들 사이에서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이 불을 받아 나갑니다. 이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즉 그룹들이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그곳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마지막 명령을 수행하기 시작합니다. 9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은 이 명령이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일사분란하게 한방향으로 나아감을 즉 네 생물이 밀접하게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일사분란하게 정해진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심판의 끝은 18절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담무스를 섬긴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장소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영적인 간음을 한 결과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앗아가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경험할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목도합니다. 그런데 이상황이 절대로 바뀔수 없다는 확증이 바로 그발강가에서 보던 생물로 확인시켜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확고하며, 얼마나 칼같은지 사랑의 하나님이라기 보다는 냉철하고 너무나 무서우신 분으로 보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하나님이 처음 이스라엘에게 이 저주와 심판을 명하시는 절이 2절입니다. “숯불을 두손게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위에 흩으라”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흩으라”는 이 단어를 유심히 보아야 합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자라크라는 단어로서 에스겔에서는 정결과 관련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에스겔서 36장 25절에서는 “맑은 물로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요.” 라고 말하며 정결의 시작으로 뿌리다 자라크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43장 18절에서는 제단에 피를 뿌리는 것과 관련해서 이 자라크를 사용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이 지금은 징벌과 저주의 의미로서 이 단어를 사용하고 계시지만,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하시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관심은 이스라엘을 깨끗하게 하여 구원하는데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암시로 정결과 회복을 의미하는 단어인 자라크를 사용하셔서 숯불을 흩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또하나의 증거가 19절에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덮었다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숭배하던 담무스와 연관이 있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은 축복의 근원을 풍년과 가장 큰 연관이 있는 태양이라 여겼고 그 태양과 동일시 했던 담무스를 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동쪽의 태양을 향해 항상 경배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동문에 머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복으로 여긴 동쪽의 영광을 지배하는 것이 담무스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장래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오실때에도 그래서 이 동쪽 문을 사용하십니다. 그 어느 것도 여호와 하나님보다 크지 않음을 보여주시며, 모든 역사의 주관자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무슨말이냐면, 이스라엘이 속히 믿음의 대상을 하나님께로 옮기기를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에 멸절하시겠다는 것이 주된 뜻이 아니라, 속히 돌아와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잊지말고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나를 그렇게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세상이 주는 유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은 오직 주님밖에는 없습니다. 이 믿음 잊지 않고 우리안에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주님으로 속히 바꾸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1. 하나님의 마음을 찾는 하루되게 하소서

2. 수요기도회를 통해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거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