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예레미야 44장 – 묵상과 기도
찬송가 : 15 장 – 하나님의 크신 사랑
예레미야 44장 “고집”
오늘 함께 묵상한 44장 말씀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예레미야 사역의 최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뒷부분에 이방 민족에 대한 심판에 관한 내용과 52장의 마지막 결론, 바벨론의 패망에 대한 예언 등이 나오지만, 연대기적으로 보면 44장의 내용보다 먼저 일어난 사건입니다.
44장은 예레미야의 마지막 설교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이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1절부터 14절까지는 죄를 회개하지 않는 백성들을 고발하고 있고, 15절부터 19절까지는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한 백성들의 부정적인 반응, 그리고 20절부터 30절까지는 그 백성들을 향한 예레미야의 정죄 및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애굽 땅에 거주하는 유다인들,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을 피해서 유다인들은 애굽 북쪽에서 멀리 남쪽까지 이주해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유다 모든 성읍에 내린 재난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그 재난의 원인이 다른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겼던 악행에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시고 처음부터 징벌을 내리지 않으셨지요.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들을 끊임없이 보내어 그 가증한 일을 하지 말라하셨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돌이키지 않았고, 끝내 하나님은 그 노여움을 백성들을 향해 쏟아버리셨던 것이었죠.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가서도 그 과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7절에 어찌하여 큰 악을 행하는데, 그것으로 자신의 영혼을 해하며 유다 가운데 남은 자들을 멸절하느냐고 한탄해하며 물으십니다. 그들은 애굽에서도 자신의 손으로 만든 우상을 섬기며, 정작 두려워해야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겸손해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12절에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까지 처단하여 멸망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벌하신 것처럼 애굽에 거주하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겠다고 하십니다. 애굽에서 거주하기를 포기하고 그 악행에서 돌이키면 살 수 있지만, 그 곳을 고집하면 징벌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경고에 돌이키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16, 17절 그들은 대놓고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말을 듣지 않고, 조상때부터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겠다고 합니다. 그들이 그들의 삶을 돌이켜보면 하늘의 여왕을 섬길때는 양식이 풍족하였지만, 그 섬김을 멈추고 난 후에는 칼과 기근으로 멸망당하였다 합니다.
20절부터는 그에 대한 예레미야의 대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했던 그 고난은 하늘의 여왕을 섬기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참고 참다가 참지 못할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패역한 일을 행하여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25절에 하나님은 하늘의 여왕을 섬기겠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섬기라고 합니다. 바라는 것을 이행하라고 합니다. 26절에 하나님께서 무서운 말씀을 하시는데, 다시는 애굽 땅에 사는 유다인들의 입에서 하나님을 부르는 이가 없게하겠다고 하십니다. 앞으로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그들은 칼을 피하지 못하는데, 그 칼을 피한 적은수의 사람들만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진리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표징으로 애굽의 바로를 적의 손에 넘기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을 봅니다. 악에서 떠나지 않으려는 강한 마음을 보게 됩니다.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에도 마음을 열지 않고, 오히려 우상을 섬길 때 더 잘 살았다며 우상 숭배를 고집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 가운데 이러한 완악함, 또는 고집스러움은 없는지 돌아보기를 소망합니다. 물론 44장에서처럼 대놓고 우상숭배를 하고자 하는 완악함과 고집스러움은 없겠지요.
그러나 삶 가운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 부분들을 우리가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을 고집하고 있다면.. 그 정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지 몰라도 방향성은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키는 것, 고집스럽게 지키는 것이 올바른 길 위에 서 있을 때에는 그것이 큰 장점이지만, 올바르지 않은 길 위에 있을 때는 멸망으로 가는 직행열차가 되겠지요. 바라기는 우리 모두는 올바른 길을 지키자는 고집스러움만 있기를.. 그렇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올바른 길을 지키는 고집스러움을 갖추기 위해서는, 또한 먼저 그 길이 올바른 길인지 알아야겠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늘의 여왕이 자신들을 지켜주었고, 복을 주었다는 잘못된 인식이 아닌, 하나님 만이 우리의 구주되시며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올바른 인식이 있어야합니다. 세상은 그러한 것 같습니다. 악인들이 잘 사는 것 같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잘 사는 것 같습니다. 시편을 보면 여러 시인들이 왜 악인들이 형통하냐고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예로부터 그래왔던 것이죠. 그럴 때에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의문이 들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더불어서 우리가 인정해야할 것이 있는데..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유혹을 받는 존재들이고 연약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러하기 때문에, 내가 걸어가는 길의 방향이 틀어져 있지 않은지 지속적으로 말씀을 통해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삶 가운데 어떻게 보여주실지 모르는 하나님의 음성에 늘 깨어있어야 하겠지요.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항상 겸손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걷기를 소망하고, 그 길을 걷는 길을 고집하는 우리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더불어 삶을 살아내며 의문이 생길 때에도, 그것조차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서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묻고 해결하자고 하는 삶의 태도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1.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길만 고집할수있도록
2. 틴드부 수련회 가운데 하나님 은혜허락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