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7일] 예레미야 2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Dec 0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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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 주님 약속하신 말씀위에서(546장)

예레미야 2장 : 유다의 죄


오늘 읽은 예레미야 2장의 말씀부터 4장 4절까지의 말씀은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배신한 것을 꾸짖으시는 내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닥칠 재난을 알려주시며 돌아오라고 초청하는 하나님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말씀이 쓰여진 시기를 알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의 멸망전 약 40여년 전부터 멸망직후까지 예언활동을 한 선지자 입니다. 이말은 이미 유대인들은 북이스라엘이 망하는 것을 보고 경험했을 뿐아니라 절대로 망하지 않을 유다마져도 위태위태한 역사적인 상황속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 역사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 이 상황을 알고 있어야 9절에서 13절까지 주님이 말하시는 주의 자녀들의 배신을 이해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예레미야서에 나타나는 탄식과 고백의 메시지를 이해할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3분의 2가 사라졌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망함으로 유대백성들은 점점 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상식적으로 이해하시는 것처럼 고대의 전쟁은 신과 신의 결투로 이해되었고, 북이스라엘이 역사속에서 사라졌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패배했다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무슨일이 발생합니까?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더 위대한 신을 향해 달려간 것입니다. 그 상황이 11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11절의 말씀처럼 국가의 신을 바꾸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북이스라엘이 망하고 오랜시간이 흐른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서히 유대인들은 동요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을 회복시키지 않으시는가? 아니 왜 유다마져도 더 힘들어지고 있는가? 이러한 의심은 점점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고 살기위해 강대국의 신들을 따라가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이렇게 진단하십니다.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13)

하나님이 말씀하신 진단은 하나님을 버린것, 그리고 스스로 살기 위해 스스로 구원의 길을 만든것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인간적으로 그럴수 밖에 없어보이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을 믿는데 나라가 망했습니다. 여전히 예배를 드리고, 여전히 종교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나라가 사라지고 환란을 겪습니다. 당시 세계관에서는 하나님이 약해져서 생긴 일로 여길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약해져서 생긴일로 바라볼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이 주님을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하나님이 나서서 주변 강대국을 파하시고, 다시금 이스라엘을 세워주셔서, 하나님이 참신이심을 드러내시면 될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판것은 지금을 살기위해서입니다. 지금을 견디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오늘 말씀을 보시면 예레미야서는 읽어나가기 힘이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예레미야시대를 살아가던 이들이 어떤 눈으로 지금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먼저 말씀해주시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함께 2절과 3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는 자면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일반적인 의미에서 인생의 가장 클라이막스를 청년의 때와 신혼의 때로 여깁니다. 신체적인 조건이나 열정들이 거의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신앙에 있어서 이 최고조의 시기를 광야의 때로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고대 근동사람들에게 광야는 피해야하고 떠나야하는 곳이지 삶의 클라이막스로 여겨지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때가 우리의 신앙의 클라이막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만을 바라보았기 떄문입니다. 먹고 생활하고 살아가는 그 모든 순간에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른것은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이 계셨기에 그곳이 신앙의 절정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간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첫열매로 삼아주시고, 그들을 보호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을 버리는 것을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그래서 19절에서는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였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줄알라..”

하나님을 버리고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없는 것이 악이고 그것이 고통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잃어버리고 포로로 고향없는 사람으로 살아간 이유가 분명합니다. 하나님없이 살고 있는 지금이 어떤지를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악이고 고통임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싫었습니다. 주의 자녀들이 이런 인생을 사는 것을 결코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돌아오라는 신호로 계속적인 경고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지금도 예레미야시대를 살던 유대인들의 그때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약해보이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나타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믿고 예수님의 구원을 믿는 것이,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조롱거리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기 바랍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음성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떠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버리는 것, 잊어버리는 것이 악이고 고통입니다. 반대로 이해하면, 지금의 현실에서 주의 은총을 바라보는 유일한 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임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오늘 하루를 살아갈때 내 삶이 광야와 같은 갈함과 힘듦이 있다고 해도, 그곳에 불기둥으로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며 시시때때로 먹여주시는 주님이 언제나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달아 광야를 은혜의 땅으로, 은총의 땅으로 바꾸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1. 광야의 삶이 주님때문에 은혜였듯이, 지금의 삶도 주님때문에 은혜임을 알게하소서

2. 수요기도회에 성령의 은혜를 부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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