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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484)

이사야 31돌아오라


남유다는 북방으로부터 앗수르라는 신흥강국의 위험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앗수르에 대항할 수 있는 실제적인 힘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힘이에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줄 수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앗수르와 긴장관계에 있던 애굽이지요. 그래서 애굽에게 갑니다. 도와달라고. 굉장히 합리적이고 바른 방법 아닌가요? 남유다 자체에 힘이 없다면, 다른 큰 나라의 도움을 받는 것이 뭐가 문제일까요? 그런데, 이사야는 책망합니다. (31:1, 개정)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말은 강인한 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병거는 군사력을, 마병은 훈련된 인력을 상징합니다. 눈에 보이는 힘, 훈련된 군사력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이 세상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있었지요. 와 닿지가 않는거에요. 하나님께 뭐 보이는 마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첨단 무기가 하늘에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나 저 애굽에는 보이는 첨단 무기와 군사력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힘이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3절에서 강하게 경고합니다.

(31:3, 개정)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그렇게 강하게 보이는 애굽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은 육체일 뿐입니다. 영을 택할지, 육을 택할지, 논리적인 선택은 당연히 영을 택하겠지요. 그러나 여전히 알면서도 어리석은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4-5절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약속합니다. 두 가지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하나는 먹이를 움켜쥔 사자입니다. 한번 먹이를 움켜진 사자는 결코 그 먹이를 쉽게 양보하지 않지요. 이처럼 사자가 먹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싸우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지키십니다.

두 번째 이미지는 새끼를 보호하는 새입니다. 어미새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필사적으로 달려듭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강력한 의지로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실 것입니다. 이처럼 강력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멀리 있지 않아요. 늘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엉뚱하게도 저 멀리 애굽에까지 가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이사야가 한 맺힌 외침을 합니다. 6절입니다.

(31:6, 개정)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굉장히 가슴 아픈 절규이지요. “이스라엘 자손아, 너희가 그토록 거역하던 그분께로 돌아와라라는 선지자의 외침입니다. 그런데, 그냥은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7절입니다. (31:7, 개정) 너희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 은 우상, 금 우상을 그 날에는 각 사람이 던져 버릴 것이며

,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우상을 버리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더 이상 다른 것을 의지하고 않고 섬기지 않겠다는 도전과 각오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회개도 이러한 결단이 필요하지요. 아무런 변화도 결단도 없는 회개라면, 회개라기보다는 후회이거나 순간의 감정이겠지요.

 

이스라엘이 우상을 버리고 돌아오기만 하면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는 앗수르가 하나님의 손에 망하는 것을 직접 목격할 것입니다. 8절입니다.

(31:8, 개정) 앗수르는 칼에 엎드러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켜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 그의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

앗수르가 망하는 것은 결코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다. , 앗수르를 망하게 하는 것은 결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두 번씩이나 반복해서 말합니다. 또한 9절에 보며 앗수르의 반석이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물러간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반석은 앗수르의 근간을 의미하기도 하고, 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앗수르를 지탱하고 있는 힘이 근원째 흔들린다는 겁니다. 그토록 두려운 앗수르가 하나님 앞에서는 이토록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하기 원합니다. 내가 정말 의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기 원합니다.

내가 나의 능력이나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라볼 때에 안도감을 느끼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안도감을 느끼는지, 늘 스스로에게 묻기 원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내 영혼은 안전합니다라고 답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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