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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싱가폴.
2012년, 창이공항에 어린 아들 손을 잡고 남편을 따라 짐을 내렸던 날... 정말이지 내 맘은 설레였었다. 한 달 여 혼자 해외 이주를 준비하면서 몸은 고됐지만 새로운 땅에 대한 기대는 그 힘듦을 금새 희망으로 바꾸어놓곤 했었다.
그렇게 밟은 적도의 땅. 훅 하니 들이치던 습하고 끈적한 열기마저도 나를 헛헛 웃게 만들었던 4년 전. 그 날을 내가 어찌 잊을까.
그리고 4년 가까이 나는 설레이고 실망하고 독해지고 싸우고 스스로를 북돋우고 투정하기를 반복하며 3곳의 레지던스 아파트와 2곳의 콘도에 짐을 부렸다. 그리고 얼마전 귀국을 했다. 하지만 싱가폴은 나를 순순히 놔주지 않았다.열렬히 귀국을 원한 내가 싱가폴은 곱지 않았던 걸까. 아마도 지인들은 알 것이다. 내가 얼마나 한국을 그리워하고 부러움으로 지인들의 귀국을 바라봤는지를. 그리도 원했던 귀국이었는데... 지금 나는 다시금 싱가폴 어딘가에서 이 글을 쓰며 지난 며칠간의 싱가폴에서의 고단함을 되뇌인다.
많은 사람들이 물어본다. 귀국을 맞이하며 심정이 어떠냐고. 그리고 왜 한국으로 가고 싶냐고 한국의 삶은 하물며 전쟁같지 않냐고 자기는 가고 싶지 않다고. 싱가폴에서 그런 질문을 수차례 받고 던지는 동안 내 머리속은 조금씩 복잡해지곤 했다. 귀국을 원하는 내가 이상한 걸까. 난 그저 감사한 삶에 만족 못하고 투덜대는 걸까. 내 주변은 너무나 귀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난 정말로 내가 이상한 걸까 라는 생각을 급기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는 실제 귀국이 다가오면서 싱가폴을 떠나는 게 아쉽거나 더 오래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더불어 인천공항에 내린 그 시각부터 난 한국과 싱가폴을 비교하며 투덜대는 요상항 행동을 했다.
그래 4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구나. 내 생각을 바꿔놓다니.
하하. 하지만 곧 내가 맞은 상황은 싱가폴에 대한 내 맘을 '그래... 역시나...'로 바꿔버렸다.
귀국 후 2주쯤 지났을까. 싱가폴에서 날아온 문자엔 아랫집에 누수가 있으니 우리집을 살펴보기를 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이 학교 개학 일정 때문에 먼저 귀국한 나와 아이를 도와주러 왔던 남편은 계약 만료일까지 싱가폴 집에 머무르기로 돼있었던 터라 문자를 받은 뒷날 예정대로 싱가폴로 향했고, 다음날 어이 없는 연락을 보내왔다. 천정에 난 구멍, 파열된 수도관에서 떨어진 물에 뒤틀린 마루와 벗겨진 페인트 조각들, 끊어진 수도와 전기, 상한 음식들이 들어있는 냉장고, 역겨운 냄새와 습함. 새벽에 도착한 남편은 그 막연한 상황을 맞닥뜨려야 했고, 도저히 그 집에서 버틸 수 없어 회사에서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걱정할까봐 아침이 되어서야 그 상황을 알렸다고. 얼마나 기막히고 황당한 일인지... 싱가폴에 수 십 여 년을 살아온 사람도 한국에서 40 여 년을 살아온 나도 겪기는 커녕 보거나 들은 적도 없을 일들에 난 다시 싱가폴로 향했다.
이제는 마무리가 됐지만, 배상문제와 앞당겨진 계약 해지 문제 등으로 수차례 메일을 보내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집주인 때문에 얼마나 맘을 조렸는지.
이런 예상치 못한 일을 겪으면서 난 싱가폴리언과 집주인의 비합리적인 태도, 느릿느릿한 대처, 내 일을 그저 가십거리로만 여겼던 주변 사람들의 무정함, 텅빈 형식적인 위로들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결국 지루한 기다림과 걱정 끝에 무사히 핸드오버를 마치고 배상문제를 결정지은 날, 풀린 다리 위로 땀과 뒤섞인 회한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그리고 이사하며 옮았으리라 추정되는 베드버그에 몸서리쳤던 그때보다는 그래도 낫다는 내 말, 아이를 괴롭히던 학생 때문에 잠 못자고 메일 쓰기를 반복하던 그 때가 더 힘들었다는 남편의 말... 씁쓸한 우리의 위로가 이어졌다. 윗집에서 축구공만한 거북을 우리집 발코니로 투척하는 바람에 산산히 부서진 등껍질 파편과 핏방울에 질겁햇던 일, 자정이 지나 몇번이고 찾아와 잠자는 우리를 깨우고는 우리집이 시끄럽다는 이웃의 신고에 초인종을 눌렀다고 말하던 시큐어리티와 아래층 누군가에게 어이없던 일, 아이를 괴롭히던 학생 때문에 분개하던 우리와 무서움에 떨던 아이, 과중된 스트레스에 지쳐 사그라지지 않는 부스럼과 기침에 시달리곤 했던 남편, 과잉진료와 겁주는 의사에 두려움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이 그리고 터무니없는 디파짓을 내고 병원에서 아이의 병상을 지켰던 일, 하하하... 정말이지 그뿐이랴.... 4년 가까운 시간은 많은 사연을 우리 가족에게 남겼다.
어떠한가. 나의 4년이 그리 녹록치는 않지 않은가. 물론 나보다 더한 이들이 몇배나 더 많겠지만은.
돌이켜보면 2012년 창이 공항에서의 느꼈던 나의 다짐과 계획조차 기억이 희미해진 지금, 애초 나의 계획과 다짐은 필요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계획은 그렇게나 허무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4년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니다. 난 그 날들 동안 꽤 많은 걸 가졌다. 늘 내게 신앙에서의 숙제였던 죄의 문제, 도저히 그 누구에게 언급할 수 없는 나의 치부와 괴로움의 짐을 다른 시각으로 보도록 실마리를 안겨 준 000 목사님, 사람에게 실망하고 지칠 때 고민을 들어주고 진심으로 나를 인정해준 000 가장님, 자기 시간을 쪼개어 통역을 도와주었던 00 아버님, 그리고 따뜻한 손길과 진심어린 격려를 주었던 이웃들. 특히나 이번 사건은 계약 만료 한달을 앞두고 벌어진 일이라 조기 계약 만료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는 점, 대부분의 짐이 빠져나가고 사람도 없던 상태여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점, 결과적으로 남편 또한 텅빈 큰 집보다는 회사 가까운 레지던스에서 묵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우리가 적은 손해배상이 다 접수되었다는 점, 아이 학교 개학전에 일이 잘 처리될 수 있었던 점 등을 생각해보면 그 절묘한 타이밍들에 감사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정말이지 그 분은 나의 기도와 맘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4년이 지나 난 귀국을 했다. 그리고 싱가폴에서 지금 또다시 귀국을 맞이한다. 가끔 생각하곤 한다. 왜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셨을까. 솔직히 나는 모르겠다. 인간인 나는 알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난 투덜거리기 일쑤고 매사에 인간을 보며 실망하기를 거듭하며 아픔을 곱씹고 원망도 한다. 도대체 내게 의연함은 없나부다. 으이그... 지혜롭지 못한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성장한 것 같다. 그리고 남편도 아이도 성장했다고 믿는다. 비록 앞으로 2보 뒤로 2보를 반복하며 느릿느릿 나가지만, 이렇게 헤쳐오고 지내온 4년은 고된만큼 달았고 지혜로왔던 결실을 내게 맛보여주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소망한다. 그 시간이 디딤돌이 되어주기를. 내가 거쳐가야 할 시간 앞에서 비겁하지 않기를. 너무나 두려운 내 맘 다 아시고 도와주시길... 작은 나는 기도하고 소망한다.
이 정도면 됐지 않을까. 내 부끄럽고 나름 다사다난했던 4년이여. 아.. 이제는 말해야지. 굿바이 싱가폴. 그래도 잘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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