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 전도서 6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Aug 1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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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 나의 영원하신 기업 (435)

전도서 6“quality”


전도서 6장에서는 부의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말합니다. 시작부터 조금 무겁습니다. 전도자가 무엇인가 불행한 일을 보았는데 자신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재물이었습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느나,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재물과 소유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납니다. 하반절을 제가 계속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라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조금 잔인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우리가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무엇을 하는데 할애합니까? , 일하는데 할애하죠. 좀 더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면 돈 버는데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할애합니다.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전도자가 말한 이 사람도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서 열심히 재물을 모았겠죠. 그런데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심지어 낯선 사람이 그 재물을 누립니다. 재물을 누리지 못한 이 사람이 전도자 자신인지 아니면 특정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그러한 삶을 보고 있거나 혹은 우리 자신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전도자는 이번에는 3절에서 자녀들과 장수에 관해서 언급합니다.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이 이상 나은 삶이 있을까요? 고대 사회에서는 자녀는 복 중의 복입니다. 고대사회에서 사람은 노동력이었기 때문에 자녀가 많다는 것은 부와 힘과 권력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축복이었죠. 거기에다가 장수까지 했습니다. 장수 역시도 하나님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이보다 완벽한 삶이 있을까요? 풍요를 누리며 오래오래 산다. 모두가 꿈꾸는 삶이죠. 그런데 전도자는 여기에다가 찬물을 끼얹습니다. 3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 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를 이를 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이런 말입니다쉽게 읽으면 이렇습니다. “사람이 자녀를 백명이나 낳고 아무리 오래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 재산으로 즐거움을 누리지도 못하고, 죽음 다음에 제대로 묻히지도 못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이런 말이죠.

 

짧은 두 구절 안에 전도자는 사람이 그토록 추구하는 세 가지를 담아냈습니다. , 자녀, 건강한 노후. 이것만 충족되면 이 보다 행복한 삶이 있을까? 이보다 완벽한 삶이 있을까? 무엇을 더 바랄 것이 있을까? 그런데 전도자는 여기에 제대로 찬물을 끼얹었죠. 그것을 다 가져봐야 행복을 누리지 못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2절 중반에서 말씀하지요.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우리가 행복의 조건들을 아무리 충족하려고 노력하고, 설령 행복의 조건들을 충족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시는 분은 결국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의 삼위일체가 아니라 진정한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행복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습니다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네요. “그가 비록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천년의 갑절. 이 말은 인간이 살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는 신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봐야 행복을 누리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말이지요시편 84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 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그렇습니다. 천년의 갑절을 산다할지라도 의미 없는 삶을 사는 것보다, 단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 그 안에 행복이 있고 그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는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예수님께서 그들 곁에 와계신 것을 알지 못했지요. 요한복음 21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예수님께서 가까이 와 계셨는데도 제자들이 왜 몰랐을까요. 정신이 없었겠죠. 제자들은 밤을 세워하며 고기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고기 잡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것만을 바라보고 그것만을 추구하며 노력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결국 빈 그물에 불과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정작 그들이 봐야봐야 할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한데 있습니다진정한 만족은 세상 어느 것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회복은 주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 이 바울의 고백이 우리 삶의 고백되기 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오늘 하루 그저 의미 없이 흘려보내기 보다는 조금 더 가치 있는 하루로 채워나아기 원합니다. 하나님께 한 번 더 감사하고, 기도할 사람을 위해 한 번 더 기도하고,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을 한 번 더 품고 안아주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1. 하반기 교육훈련이 은혜가운데 진행되도록.

2. 주일 예배를 준비하는 모든 손길 위에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