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 복의 근원 강림하사(찬28장)
150편 “창조의 이유, 찬양의 이유”
시편 150편은 시편 전체의 마지막 시입니다. 그리고 앞선 네 편의 “할렐루야”로 시작하는 할렐루야 시편의 마지막 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위치에 본 시를 둔 것은 시편 저자의 의도가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시편의 1편에서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교훈으로서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설명한 후, 이제 인간의 가장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임을 제시하며 시편 전체를 끝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앞선 네 편의 할렐루야 시편 가운데서도 독특한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선 네 편의 시들이 여호와를 찬양하는 이유를 열거하거나 찬양을 촉구하며 찬양의 내용을 소개한다면, 오늘 본문은 아무것도 열거하지 않고 그저 찬양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시편기자가 시편 전체를 마감하면서 열정과 환희로써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 그 이상의 값진 것이 없음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죠.
또한 오늘 본문은 모든 구절이 명령형 문장으로 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1절에서 찬양의 대상을, 2절에서 찬양의 이유를, 3-5절에서 찬양의 방법을, 6절에서 찬양의 주체를 분명하게 구분해주고 있습니다. 즉, 찬양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며, 찬양의 이유는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과 그의 지극하신 광대하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방법은 악기 소리와 목소리, 춤 등 모든 것을 동원해서 찬양하며 찬양의 주체는 호흡이 있는 모든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은 모두 명령형을 사용하여 단순하고 강하게 시인의 확고한 찬양의 열의를 반영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어떤 찬양시보다 더 정연하고 논리적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오늘 본문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절에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성소”가 어디입니까? 거룩하게 구별된 이스라엘 백성만 들어갈 수 있었던, 하나님의 임재가 계신 땅의 가장 거룩한 장소 아닙니까? 그렇다면 “궁창”은 어디입니까?
NIV “praise him in his mighty heavens.”
우리말성경 “그분의 능력이 머무는 하늘에서..”
즉, 땅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머무는 하늘나라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라! 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궁창은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내며 모든 보좌와 권세 등 영적 세력들의 거처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시인은 모든 이 세상의 피조물들뿐만 아니라 하늘 나라의 영적 세력들, 즉 천사들에게도 찬양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중심에는 예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예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합니다. 실제로 오늘날 교회를 보면 모든 행사나 모임, 심지어 야유회나 운동회에서도 예배는 빠지지 않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회가 예배의 갱신에는 별반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예배의 형식을 바꾸고 분위기를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교회의 중심이며 성도의 신앙의 중심인 예배의 가치를 알고 있다면 끊임없이 예배에 대해 고민하고 새롭게 갱신하는 신앙적 열심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찬양은 가장 성도다운 행동으로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구속하심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구속주 되심을 고백하는 성스럽고 아름다운 의식입니다.
혹시 우리에게 아무런 감격도, 기쁨도 찾아볼 수 없는 적막한 예배를 드리는 어리석은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의 감격은 우리 안에 있는 구원의 감격과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열정과 기쁨에서 비롯됩니다. 그렇다면 예배의 적막함은 우리 안에 그 열정과 기쁨이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라고 구했던 다윗처럼 우리도 현재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재점검하고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세우고 언제나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넘쳐나는 삶을 살아가며 그에 근거한 감사의 찬양을 올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6절의 “호흡”은 창세기 2장 7절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실 때 인간이 생령이 되었다는 기록에서 나오는 것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생기로 호흡하며 생령을 지닌 모든 피조물들은 한 때 심판의 대상이었으나 하나님의 구속으로 인하여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 이제 호흡하는 목적이 그 분을 찬양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시인은 총 150편의 시편을 마무리하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남아있는 많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교훈을 줍니다. 것을 바로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찬양은 기도와 함께 성도의 호흡과 같습니다.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인식하는 영혼이라면 찬양이 그의 호흡처럼 매순간 고백되고 선포되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피조물로서 이처럼 훌륭한 찬양의 열정과 기쁨과 회복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평생의 매순간마다, 호흡이 계속되는 모든 날 동안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을 높이고 송축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하늘나라에 사는 백성들의 비결입니다.
- 기도제목
1. 구속하신 은혜를 날마다 상기함으로 말미암아 예배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2. 온 열방 가운데에 여전히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들이 속히 주 앞에 돌아오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