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5일] 시편 144편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Jun 1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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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찬539장)

144편 “마음이 흔들릴때, 하나님을 묵상하라” 


오늘 읽으신 시편 144편은 왕의 기도시로서 시편 18편과 상당히 흡사한 노래입니다. 차이가 나는 점은, 오늘의 시편에서 하나님은 미래의 사건으로 소망하는데 시편 18편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과거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은 시편 18편이 오늘 말씀에 대한 응답이라고 여깁니다.

시편 18편은 표제어에서 "다윗이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주신 날에 드린 노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왕으로서 실제적인 새출발을 하며 드린 기도입니다. 그래서 시편 18편의 노래는 실제 그가 겪은 도망자로서의 삶이 그대로 추억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말씀은 다윗이 왕이되기전 아직 고난과 역경이 진행중일때 불려진 노래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긴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1절과 2절의 말씀입니다. 일반적인 시편에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이십니다' 라는 표현은 시편의 말미에 등장하는 관용어구입니다. "내가 이렇게 어려운 지경에 처해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의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편 144편은 제일 먼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요새입니다, 산성입니다, 건지시는 분입니다, 방패이십니다 라고 노래하며 하나님에 대해 비슷한 개념의 말들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편기자의 마음을 칼빈은 이렇게 해석하였습니다. 

'이것은 별 의도없이 그저 나열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믿음을 더욱 든든히 하고 강화하기 위해 시인이 고안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시련의 바람이 몰아쳐 올 때 그 마음이 쉽게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도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자꾸 넘어지려고만 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분의 인자(仁慈)를 망각할 때 우리는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진행중인 고통과 환란속에서 낙심하지 않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하나님에 관한 특성들을 나열하며 외치는 것입니다. 즉 다윗이 부르짖는 하나님의 여러가지 모습은 하나님만을 붙듦으로 낙망하는 자신의 마음을 굳게하고자 하는 최선의 노력인 것입니다.' 


그러한 다윗의 마음은 인간의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게 합니다. 3절과 4절의 고백처럼 인간의 유한함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헛것같다는 말은 인간은 한번의 호흡같다는 말로 인간은 유한하고 일시적인 존재라는 말이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는 말은, 그림자는 해가 뜨면 생겼다가 지면 없어져 버리듯이 인생은 단조로운 주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사라져 버리고 마는 존재임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유한성을 알게된 다윗은 결국 스스로를 구원하겠다는 마음을 접고, 유일한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께 눈을 돌립니다. 그리고 스스로는 답을 찾을 수 없는 주변에 존재하는 원수들, 즉 삶의 문제들을 하나님께 의탁합니다. 

5절의 이미지는 과거 모세가 시내산에서 만난 하나님의 이미지와 유사합니다. 출애굽기 19:18절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산에 연기가 자욱하고 그곳에 불로 임하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시인은 이 말씀을 떠올리며, 지금 이 고난의 현장에 하나님이 임하시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픔의 현장에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나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6절에서 11절까지의 고백을 통해 자신의 구원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임을 굳건히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이 믿음의 마음이 아픈 현실때문에 변하지 않기위해 여러가지 모습의 하나님을 묵상하고, 고백하고, 외치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노력은 이러한 영적 결실을 맺게 합니다. 함께 12절에서 15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과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돌들과 같으며,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는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12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은 앞의 구절과 완전히 반대되는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하나님만 바라보는 다윗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평화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들은 이부분은 다윗의 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썼다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이 고백은 다윗의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고난속에서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다윗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응답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라는 표현은 태평성대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아름답게 다음은 모퉁이돌들같다는 말도 전쟁의 위협과는 거리가 먼 번성한 나라의 위용과 힘을 보여주는 문장입니다. 수많은 곡식들이 창고에 있고, 수백만의 가축이 있습니다.수소는 무겁게 실었다는 표현은 출산시킬 힘이 있다는 표현으로 가축들이 계속적으로 번식하게 될것을 말하는 표현이고 침노하는 일이나 나아가 막는일이 없다는 것은 전쟁을 할 필요가 없는 평화의 시대를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즉 다윗은 진행중인 고난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있었고, 그 붙듦의 모습속에 하나님이 앞으로 다윗에게 주실 구원함의 은혜를 보여주고 계시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은혜를 보았기 때문에 15절의 고백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우리의 삶은 왕으로서 평화속에 거하는 다윗보다는 지금 고난속을 헤매이며 답을 찾고자 갈망하는 오늘 시편의 다윗과 더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순간 다윗은 답을 찾는 것을 멈춥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자신이 찾아야 하는 그 어떤 행동도 중단합니다. 대신에 다윗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되새깁니다. 상당히 비논리적인 행동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말씀은 시편 18편에서 답을 주듯이 그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해결의 시작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아무쪼록 우리도 이러한 다윗의 신앙을 본받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윗의 고백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삼아 복된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제목

1. 지금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붙드는 내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에게서 답을 발견하게 하소서

2. 유스부 태국 단기선교 일정을 인도하시고, 오늘 만나는 아이들에게 복음이 그대로 전달되게 하소서

3. 수요기도회를 인도하시는 신반석 선교사님 가정에 은혜와 복을 허락하시고, 음악이라는 도구로 복음이 온전히 전달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