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7일] 시편 138편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Jun 0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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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 나의 믿음 약할 때 (374)

시편 138“말씀이 크게 보이는 인생


  주석은 시편 138편을 다윗이 주변국들을 정복한 후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지은 찬양시라 보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후반부로 갈수록 여전히 환난과 원수들의 분노가 시인 주변에 둘러싸여 있음을 볼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1. 신들 앞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1-3)

1절에서의 신들은 이스라엘 하나님과 겨뤄왔던 이방 나라들의 신들로 보면 좋을 듯합니다. 이러한 적대적인 종교적 환경과 이방 나라들의 위협 속에 살고 있었지만 다윗은 2절의 말씀처럼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성실하신 인자하심을 생각하고, ‘주의 이름에 감사를 드립니다.

 

2절에서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는 시인이 성전의 뜰 안에 있었는지, 혹은 성전에서 멀리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절에서처럼, 전심으로 엎드려 예배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는 결코 성전에만 계시질 않습니다. 시편 1397-8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치라도 거기 계시나이다.”와 같이 137편에서의 시인은 하나님을 성전에만 계시는 줄 인식하였다가, 1절 이방 신들의 포위 속에서와 7절의 환난을 통하여 어디서든 계시는 하나님으로 인식이 확장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속하여 2절 말씀을 보시면, 시인이 한 가지를 더 감사하게 되는데 바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입니다. 성경 밑에 나오는 각주를 보시면 주의 모든 이름대로 주의 말씀을 크게 하셨음이라.’ 나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시인은 주님의 이름말씀을 연관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치 시인 자신이 모든 대적들과의 위기 속에서 부르짖었을 때에, 자신을 구원해 내시되 주의 말씀으로 구원해 내시는 여호와를 경험한 듯 보입니다.

이처럼 주의 말씀은 3절 시인을 구원해 내십니다. 주의 말씀은, 아무리 강한 대적들이 있다 하여도 시인으로 하여금 당당히 맞설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강하게 하셨습니다. 담대하고 용맹스럽게 하셨습니다.

 

2. 세상의 왕들 앞에서 드리는 감사 (4-6)

이에 4절 모든 왕들은 주께 감사해야 합니다. 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금 시인을 통하여 주의 입의 말씀을 듣고 보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5. 시인을 통해 역사하시는 여호와의 영광이 곧 행적이 크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시인이 자랑하고 감사하며 높이는 여호와의 행적이란 보통 이방신들을 자랑하는 그들의 방식과는 달라 보입니다. 6절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 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

 

보아라~ 고난 중에 나를 이기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신 여호와의 행적을 보았느냐? 이분을 찬양하라! 로 고백하면 멋있고 좋으련만, 시인은 도리어 낮은 나를 굽어 살피시고 교만한 자를 다 아시는 그분의 인자하심과 성실함의 영광을 높이고 있다는 겁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것으로는 이방나라의 백성들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다윗의 이러한 행동을 더욱 우습게 여길 뿐입니다. 더욱 약해보이는 다윗의 이 고백이, 대적들이 볼 때 과연 찬양을 터져나오게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콧방귀 뀔 일입니다.

 

3.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7-8 )

그러나 시인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하여 환난 중에도 자신을 살려내시고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는 여호와의 오른 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시인이 지금 자신의 상황이 역전 될 것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원수들 눈앞에서 자신을 승리케 하실 분을 기대한 것이 아닙니다. 6낮은 나를 굽어 살피시고, 교만한자와 악인을 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인자하심을 바라보고 찬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자신이 비록 고난 가운데 산다 할 지라도요. 어쩌면 그들 눈에는 여전히 패배자처럼 보일지라도요. 그분의 오른손을 내미셔서 구원해 내실 것을 시인은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8절에서, 시인 자신이 주께서 당신의 손으로 지으신 자임을 믿었기에 그렇습니다.

 

저와 성도님의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혹 우리에게 고난이 왔을 때에 버텨낼 수 있는 힘은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믿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지금도 여전히 나를 굽어 살피시고 악인들을 다 알고 계신다는 그 믿음 이외는 없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와 성도님이 고난을 안 받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고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도 특별히 없습니다. 욥도 하나님에게 자신이 고난 받는 이유를 물어보았을 때에, 하나님이 욥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욥아, 네가 의인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고난을 받으면 왜 안 되냐?' 너가 한 대답해보라는 겁니다.

욥도 하나님의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였듯이, 저와 성도님의 삶에도 이러 저러한 고난에 대하여 답을 내릴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나는 정말로 모르겠습니다.의 대답이 더 진실해 보입니다. 또한 하나님! 하나님이 여전히 나를 굽어 살피시고 악인들을 다 알고 계시는 그 믿음은 있습니다.의 고백 외에는 없어 보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다윗의 삶을 끌고 가셨습니다. 굴곡 있는 삶으로 하여금 당신의 말씀만이 크게 보이시도록 다윗을 이끌고 다니셨습니다. 저와 성도님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각자 다루시는 방식은 다를지 모르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높은 곳에 계시어 낮은 우리를 살피시고 우리를 지으셨기에 그분 뜻대로 저와 성도님을 빚어 가실 겁니다. 그러니 무슨 일을 만나든지 기뻐하시고 움츠러 들지 마시고 오늘 하루도 즐겁고 힘차게 살아가시는 나섬교회 새벽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기도제목

1. 말씀이 크게 보이는 인생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는 하루 되게 하옵소서.

2. 틴즈부 유스부 단기선교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만 인도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