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시편 135편 – 묵상과 기도
찬송가 : 412 장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시편 135편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편 135편은 특별한 표제어는 없지만, 우상들의 무력함과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능력을 찬양하는 찬양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35편은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요, 1절부터 4절까지는 주님의 종들을 향한 찬양의 초대라고 할 수 있구요. 5절부터 7절은 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8절과 14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절부터 18절은 능력의 하나님과 반대되는 우상의 무능함을 꼬집고 있으며, 마지막 19절부터 21절까지는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로 하여금 찬양토로 초대하고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1절부터 보시면, 1절은 마지막 절인 21절과 수미일치를 이룹니다. 1절과 끝절인 21절이 내용상 같다는 것이죠. 그리고 2절까지 함께 보면 134편에 사용되었던 어휘들과 같은 어휘들이 등장합니다. ‘여호와의 종들’, ‘여호와의 집’, ‘서 있는 자들’ 과 같은 단어가 겹치는 것이죠. ‘여호와의 종’ 즉 이 시의 청중들은 지금 성전 뜰에 서 있습니다. 성전 안에서 노래한 시편으로 생각할 수 도 있지만, 더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품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 여호와 하나님의 종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3절은 ‘여호와를 찬송하라’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는 시편 가운데도 독특한 부분입니다. 대게 이러한 표현은 시편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데, 135편은 3절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는 찬송의 이유를 여호와 하나님이 선하시고, 그의 이름이 아름답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아름답다는 것은 그냥 단순히 이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행하신 일들이 아름다고 선한 것임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는 4절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을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습니다. 그런데 택하신 이유가 ‘자기를 위하여’ 라고 표현을 합니다. 자기를 위해서 무엇을 택했다고 할 때, 그 주체가 인간이라면 이기적인 모습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다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뜻대로 행하실 때, 그것이 선하고 의로우며 아름다운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도 그 뜻에 부합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길에 순종할 때에, 선하고 아름다운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5절부터 7절까지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노래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다른 신들보다 위대하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이러한 확신의 선포가 있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지혜와 겸손, 그리고 사랑이 함께 해야 하지만, 의심과 부끄러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확고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선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6절과 7절에서 보여지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상과 생각에만 존재하시고 우리의 삶을 도덕적으로 윤택하게 해주는 것으로 끝나는 분이 아니라, 모든 자연만물을 소유하시며, 그것들 가운데에서 그것들을 자신이 기뻐하시는대로 운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기를 축복하며, 그것이 삶 가운데 자연스럽게 흘러 나가기를 축복합니다.
8절부터 12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인 8절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애굽에서의 재앙 중 10번 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의 피가 발라져 있지 않은 모든 집의 첫 번째 난 사람과 짐승을 죽이심으로 애굽과 바로를 꺽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앞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애굽에 보여주셨던 9가지 재앙은 하나님께서 열방의 모든 신들보다 강한 분이심을 보여주는 표적이었습니다. 애굽의 중요한 식수원이었던 나일 강을 피로 바꾼 첫 번째 재앙으로부터 애굽의 가장 강하고 높은 신의 상징인 태양, 그 태양의 빛을 3일 동안 없애버리셨던 9번째 재앙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신들 위에 있음을, 그리고 다른 신들은 헛된 것임을 보여주는 표적이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10절부터 12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주신 다음, 내버려 두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호하셨고 인도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의 강한 왕들을 치셨고, 가나안 땅에 이미 터전을 잡고 살고 있던 강한 나라들도 무너뜨리셨습니다. 특별히 요단강을 건너 처음 만났던 여리고 성을 그냥 돌기만 하고 소리를 질렀을 때, 무너뜨리셨던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그 시대에만 국한되어 사람들이 놀라고,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해외토픽 같은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13절에서 보여지듯이 그의 이름과 역사는 영원하며, 그 역사를 기념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일은 대대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접하는 이들의 당연한 반응입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만들고 섬겼던 우상들은 하나님의 걸음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능력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15절부터 18절까지 볼 수 있듯이, 그것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도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며, 그들의 모양에서 입이 있어도 그 입은 말하지 못하는 입이며, 눈 모양이 있어도 그 눈들은 미래는커녕 눈 앞에 보이는 현재도 볼 수 없고, 귀 모양은 있지만, 마음의 간구는커녕 들리는 소리도 들을 수 없고, 그들의 입은 호흡할 수 없는, 살아있지 않은 죽은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들의 특징인데,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자들 또한 그 우상과 같이 될 것이라고 엄한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만들고 섬기며, 그것들을 쫓는 자들의 마지막은 그들이 쫓는 것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만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135편의 마지막 파트인 19절에서 마지막 21절까지도 그렇게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촉구하며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 아론의 족속, 레위의 족속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들, 우리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선포하며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는 우리들 중에는 대놓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에 보이는 우상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명예와 인간관계 또는 하나님과 혼동하는 나의 자아 등 많은 것에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한 유혹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지키며 스스로 조심해야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어떤 능력으로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을 이끄셨고, 나의 삶을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셨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삼키려고 달려오는 저 파도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을 따라 이 바다를 안전히 항해하는 우리 모두의 삶, 오늘의 하루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1. 많은 유혹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지켜서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도록
2. 틴즈, 유스 ,청년부 단기선교를 준비하는 모든 학생들과 청년들, 그리고 목사님들, 전도사님에게 지혜와 힘을 더하여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