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407장)
시편 111 "지금 행하시는 주님을 만나자"
오늘 읽은 시편 111편과 내일 묵상할 112편은 쌍둥이 시편으로 불려지는 시입니다. 왜냐하면 두 시편이 다 짧은 알파벳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핵심적인 용어와 주제에 있어서 많은 일치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은 모두 22자인데, 시편 111편은 각절마다 두개의 알파벳이 순서대로 쓰여있고, 9절과 10절에서는 3개씩 사용해서 10개의 절을 통해 22개의 알파벳을 차례대로 다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1절은 히브리어 첫 자음인 ‘알렙’으로 시작하는 문장인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라”라는 문장에 이어서, 두번째 자음 ‘베트’로 시작하는 내가 정직한 자들의 모임을 감사하겠다는 문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어로 따지면 각 문장의 시작이 알파벳 abcd의 순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히브리 알파벳 순서를 따라 시를 배열하는 것을 답관체(踏冠體) 형식의 시라고 합니다.
언어적인 한계상 우리말 성경이나 영어성경을 보더라도 이러한 히브리어의 규칙적인 배열이나 특별한 문장을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시인이 특별한 단어의 배열을 통해 보다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다는 정도는 답관체시를 읽으실때 고려하며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에 영향을 받지 않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1절의 선언인 "할렐루야"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할렐루야 라는 단어는 그래서 이 시의 표제어 내지는 주제어로 인식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시는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마치는 노래입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말이 곧 할렐루야 이기 때문입니다. 즉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찬송을 답관체의 형식을 빌어서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인이 이렇게 독특한 방법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가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오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2)
이 말씀의 원문을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여호와의 행사를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그것이 연구된다’ 라는 의미입니다. 좀더 쉽게 풀어보면, 여호와의 행사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기쁨을 지닌 자들은 향후로도 동일한 은혜 받기를 갈망하기 때문에 그것을 연구하고 묵상한다는 말입니다. '기리는도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라쉬'은 연구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것을 연구한다는 것은 지금 이순간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직접 경험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확신을 얻기 위해 지난 날들, 실제로 역사하신 하나님의 일들을 연구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시인은 지금 자신의 삶에 실제로 다가오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을 경험하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찾아오시고 함께하시는 주님을 놓치지 않고 만나고 교제하고 인도함을 받기 위해서 주님의 행하신 일들을 묵상하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후로 실제 역사속에서 행동하신 주님을 노래합니다. 왜냐하면 그 주님이 지금도 동일한 모습으로 우리를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3절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행동은 존귀하며 엄위하며 영원합니다. 그 신앙이 시인에게 있었기에 지난날의 주님을 묵상하지만, 실제로는 지금 역사하고 계신 주님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4절과 5절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사건과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을 먹이신 주님과 시내산에서의 영원한 언약을 노래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논리로 6절은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땅을 정복하는 사건을 묵상하는 것이며 7절과 8절은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땅의 통치원리인 주의 말씀, 즉 율법의 탁월함은 노래합니다.
출애굽의 시기부터 가나안땅에서의 삶까지의 모든 과정은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시작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시편 5권은 에스라나 느헤미야 시기에 편집된것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지금 시인이 현재 하나님의 행하심을 직접체험하기를 바라며, 이스라엘에서 국가로서의 모습의 시작점을 연구하고, 그 안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행동을 묵상하는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으로 여겼던 나라를 잃었다가 이제 다시 재건중인 상황에서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잃고 있다가 이제 새롭게 시작합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의 실제적인 행동이 필요한 것입니다.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이 결국 이스라엘의 시작에 함께하셨던 주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면서 노래를 마칩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라.”(10)
다잃어버리고 난 이후, 이제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그때가 되었을때 깨달은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온 마음과 정성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시인은 그것을 되새기며 이제 주님만을 따르겠습니다. 주님만을 경외하겠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를 만나주시고 주님의 언약을 성실히 이행하여 주셔서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라는 마음으로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도 시인처럼 지금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바로 오늘, 바로 이시간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시인처럼 할렐루야의 찬양이 우리의 온 마음에서 율려퍼져서 지금 이시간 행하시는 주님을 실제로 경험하는 우리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기도제목 -
1. 주님을 찬양함으로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을 경험하게 하소서.
2. 치열한 영적 전쟁터에서 승리하신 주님을 붙듦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3. 교회에서 봉사하는 베다니요양원, 성요셉요양원, PCC, APEX 데이케어센터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흐르며, 이분들이 평생의 주님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시고, 봉사로 섬기는 지체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