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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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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 시편 102편 – 묵상과 기도 찬송가 : 438장 –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시편 102편 “나의 부르짖음이 주께 상달되기를” 시편 102편은 고난 당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의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로하는 기도라는 표제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표제어에서 볼 수 있듯이 슬픔을 쏟아내는 애가입니다. 시편 102편도 더 잘게 쪼갤 수 있지만, 크게 4부분으로 분류해보면, 1절과 2절이 서론에 해당하는 ‘하나님을 향한 간청’이며, 3절부터 11절까지가 육체적 고통과 사회적 유기에 대한 개인적인 애통을 노래합니다. 12절부터 22절까지는 시온에 나타날 주님의 주권을 위한 기원을 노래하고 있으며, 23절부터 28절까지 개인과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기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02편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시인은 육체적인 고통을 느끼고 있고, 목숨이 끝날 것 같은 위태로운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는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은 바벨론 포로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는 그곳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하나님의 유기를 느끼고 있지만, 회복과 새로운 미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1절부터 살펴보면, 아까 말씀드린대로 1절과 2절은 하나님을 향한 간청입니다. ‘기도’, ‘부르짖음’ 등으로 기도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2절에서의 ‘괴로운 날’이라는 표현으로 시인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02편의 두 번째 파트인 3-11절은 육체적 고통과 사회적 유기에 대한 애통입니다. 특별히 3절부터 7절까지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묘사하고 있는데요. 3절에 보시면 연기 같이 소멸하고 뼈가 숯 같이 탔다고 합니다. 헤이즈 같이 거대한 연기는 잘 사라지지도 않는 것 같지만, 보통 연기라 하면, 퍼지면서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뼈가 숯 같이 되었다고 하는데, 나무가 숯이 되려면 오랜 시간 강한 불에 노출되어야 하는 것처럼, 오랜 시간 강한 고통 가운데 노출되어 있었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 중에 하나가 식욕인데, 사람이 극심한 고통 가운데 빠지면 그 식욕을 잃어버리게 되죠. 4절에서는 음식 먹는 것도 잊었다고 하며, 마음이 풀 같이 시들고 말라 버렸다고 합니다. 고통으로 찌들어버린 마음은 웬만한 외부의 충격에도 반응하지 않는 시들어 버린 마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고통 가운데 흘러나오는 탄식 소리가 살이 뼈에 붙은,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뼈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죠. 6절에서는 자신을 광야의 올빼미와 황폐한 곳의 부엉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새들은 시인의 고립감을 극대화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정서에도 이런 새들은 스산한 배경을 표현할 때 극적인 요소로 사용되고는 합니다. 그만큼 시인은 정신적으로 외롭고,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러한 정신적인 고통으로 시인은 7절에서 잠들 수 없어 밤을 새우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8절부터는 사회적 유기에 대한 애통입니다. 사회적 유기라 함은 내 안에서가 아니라, 내 외부에서 대적들의 공격과 조롱을 말하는 것입니다. 8절에서 원수들이 하루 종일 나를 비방한다고 합니다. 누군가 잠깐 나를 험담하고 비방해도 정신적으로 충격이 클 수 있는데, 그러한 비방을 하루 종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수들은 말로만 나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이 미칠 듯이 날뛰며 나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나를 가리켜 맹세한다는 것은 마치 ‘너가 잘되면 내 성을 간다.’ 뭐 이런 식의 비방을 하는 것이죠. 그런 상황을 9절에 재를 밥 같이 먹고, 눈물 섞인 물을 마신다고 표현합니다. 재를 뒤집어쓴다는 것은 고통과 슬픔을 상징하는 것인데, 그러한 상황이 밥 먹듯이 일어난다는 것이죠. 10절에는 이러한 고난의 근본적인 이유를 언급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분노와 진노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혼내는 것을, 매를 대는 것도 아니고 들어서 던져버리셨다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이 큰 것임을 표현하는 것이죠. 11절은 102편의 두 번째 부분을 마무리 하면서 자신의 상황이 회복을 소망할 수 없는 기울어지는 그림자, 풀의 시들어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거기서 주저앉지 않습니다. 12절에서 주는 영원히 계시며, 그에 대한 기억은 끊기거나 사라지지 않고 대대에 전해질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12절부터 22절까지는 시온에 나타날 주님의 주권을 기원하고 있죠. 지금의 상황은 처참하지만 주님께서 다시 일어나실 것입니다. 그리고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고, 정한 기한이 다가오니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시편에서 시온은 태초의 낙원 에덴동산, 하나님의 성,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성소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산이며 터가 높고 아름다운 온 세상의 기쁨이자 큰 왕의 성입니다. 그곳은 믿는 자들의 피난처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는 성전입니다. 시인은 시온의 회복을 구하며, 시온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고, 나아가 이스라엘의 회복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에 시온의 돌들과 티끌조차 즐거워하고 은혜를 받으며, 16절에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절하심으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셔서 15절에 모든 왕들도 주의 영광을 경외합니다. 17절에 하나님은 결코 빈궁한 자의 기도를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세상은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고통을 무시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렇지 않으십니다. 18절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들은 다 기록되어 앞으로 세워질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19절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사 그들을 해방시켜서서, 21절 하나님의 이름을 시온에서 선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인데, 22절에 보시면 민족들과 나라들이 함께 모여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한 나라의 회복을 넘어서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또는 하나님께 굴복하는 종말론적인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죠. 23절부터 마지막까지는 개인과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기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23절에서 하나님께서 내 힘을 인생의 끝까지 허락하지 않으시고, 힘을 중도에 쇠약하게 하시고 나의 인생의 날을 짧게 하셨지만, 시인은 간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24절에 주의 연대가 대대에 무궁하니 자신을 중년에 데려가지 말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25절부터는 하나님의 무궁하심과 영원하심을 노래합니다. 그는 땅의 기초, 하늘, 즉 천지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 전부터 계셨죠. 26절에 그러한 천지도 없어지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존하며 그렇게 낡고 없어지는 천지도 의복처럼 바꾸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27절에 그러한 능력의 주님께서 우리를 향한 인자와 사랑이 한결 같으시고, 영원하십니다. 28절에 그러한 하나님을 섬기는 주의 종들, 그리고 그의 자손들은 항상 안전히 거주하고, 대적의 손에 넘겨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설 것을 노래하였던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반부에서 노래했던 것처럼 지금의 상황은 암담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버리신 것이 아니며, 곧 은혜로 회복시키실 것을 소망하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연기 같이 붙잡혀지지 않고, 극심한 고통과 괴로움으로 나의 마음이 숯처럼 타버린 것 같을 때, 삶의 소망이 사라져 어떠한 의욕도 시들어버릴 때가 있을 것입니다. 회복과 소망이란 개념을 도저히 내 안에 찾아볼 수 없을 때, 마치 하나님께서 나를 던져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우리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토해놓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앞에 그러한 심정을 토해놓으려 나아갈 때에도 회복과 소망을 기대하지도 않을 수 있겠죠. 하지만 시인의 마음을 만지셨고 은혜를 기억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도 만져주실 것을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1 우리를 비롯하여 우리 주위에 회복과 소망이 필요한 영혼들에게 참된 회복과 소망이 있기를 2 비전트립 중에 있는 선교사님 내외분과 리더쉽들에게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3 이번 주 토요일 주일 청년부 수련회가 있습니다. 소중한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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