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 시편 82편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Mar 3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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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시편 92편 – 묵상과 기도 찬송가 : 86장 –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시편 92편 “하나님의 집에 심긴 나무” 시편 92편은 ‘안식일의 찬송시’입니다. 탈굼에서는 ‘아담이 안식일에 부른 시와 노래’라는 표제어로 나옵니다. 유대 전통으로는 아담이 창조의 첫 안식일에 이 시를 작곡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고 합니다. 구약에서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는 날로 제정되었었고, 출애굽 이후에는 안식일이 출애굽을 기념하는 날로 새롭게 제정되었었습니다. 안식일은 창조와 구원의 개념에 함께 포함된 날로,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일로 그 의미가 옮겨 오게 되었습니다. 안식일과 주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고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은혜를 찬양하는 날이라는 맥락에서 92편을 접근할 수 있습니다. 13절의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라는 표현을 통해 많은 학자들이 이 시편은 성전이나 회당의 예배에 잘 어울리는 시라고 말합니다. 92편은 4파트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1절부터 4절까지 감사의 즐거움과 기쁨을 노래하고 있으며, 두 번째는 5절부터 8절까지 주님의 깊은 생각과 그에 못 미치는 어리석은 자의 무지를 노래합니다. 세 번째는 9절부터 11절까지 원수를 흩으시는 주님의 능력을 노래하고, 네 번째는 의인의 축복과 번영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1절부터 보시면 1절부터 3절까지 묶여져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기본으로 나누어보면, 1절은 지존하신 하나님,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는 일이 좋습니다. 2절은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알리는 일이 좋습니다. 십현금과 비파를 타며 수금 가락에 맞추어서 노래하는 것이 좋습니다. 로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시편은 ‘찬양하자’ 또는 ‘찬양하라’ 등의 표현으로 1절을 시작하지만, 여기서는 ‘좋습니다’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신 그 말씀처럼 시인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자하심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인자함으로 우리를 용서하고 품으시는 것이죠. 인자하신 하나님은 성실하기까지 하십니다. 성실하다는 것은 들쑥날쑥하는 것 없이 꾸준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낮이나 밤이나 성실하십니다. 인간의 마음은 시시때때로 변하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요동함이 없습니다. 십현금, 비파와 수금은 모두 현악기입니다. 하지만 그 크기가 달라서 다른 음을 냅니다. 이러한 다양한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도 좋은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첫 번째 파트를 마무리하는 4절은 찬양하는 이유를 노래합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 ‘주의 손이 행하신’일로 인하여 기뻐하고 높이 외치며 찬양하고 있음을 노래합니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때로는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일이 풀려가지 않을 때, 그 때가 하나님의 역사의 종착점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로 인하여 찬양하고 감사하며, 앞으로도 그렇게 도우실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5절부터 8절까지는 하나님의 깊은 생각과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을 노래합니다. 5절에서는 4절에서 노래했던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노래하고 있습니다. 6절에는 깊으신 주의 생각을 어리석은 자와 무지한 자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도 때로는 그 생각을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일부러 숨기시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해되지 않고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의지도 갖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무지한자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한번만 나옵니다. 히브리 원어를 살펴보면 그 어근이 짐승이라는 단어와 같습니다.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은 짐승 같은 사람이라는 말로, 고집이 세고 어리석음에 집착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하나님께서 은혜로 자신이 행하신 일들을 보여주셔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깨닫지 못합니다. 7절에서 어리석은 자와 무지한 자의 모습을 악인들, 악을 행하는 자로 좀 더 그 모습이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풀’은 힘이 없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뒤돌아서면 자라고, 또 뒤돌아서면 자라는 무섭게 자라고 뻗어나가는 기세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은 평소에 메말라 있다 하더라도 비가 한 번 오면 식물들이 무섭게 솟아나고 번성하며 땅을 뒤덮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악인들은 틈만 나면 무섭게 그 세력을 확장하며 흥왕한다는 것이죠. 이렇게 악인들이 자라고 흥왕 하는 것은 의인에게 시험거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그들의 확장과 흥왕을 모르시거나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지존, 이 땅에 비할 바 없이 최고의 존재라는 것인데, 그것이 단기간이 아니라 영원하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결국에 9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악을 행하는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는 것이죠.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정녕’ 그들은 패망할 것입니다. 그렇게 무섭게 세력을 키우고 하나 되어 악을 행하기에 힘썼던 악인들도 결국은 다 흩어질 것입니다. 그 힘과 세력이 무색할 만큼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원수들의 패망을 노래하는 9절부터 11절까지는 원수를 흩으시는 주님을 노래합니다. 원수들을 흩으시고 패망케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제 의인으로 대표되는 나를 높이십니다. 10절에 보시면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다고 합니다. 동물의 뿔은 동물들의 전투에 있어서 큰 무기로써 힘과 권세를 상징합니다. 주께서는 나의 힘과 권세를 높이시고,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기름은 붓는 것은 왕이나 선지자로서 세움을 받을 때 행해지던 의식이었습니다. 선택 사람으로서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죠. 원수들은 패망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힘과 권세를 세우시고, 힘찬 모습으로 시작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11절에 보시면 원수들이 그의 악한 행동에 합당한 보응을 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내 귀에 들리는 것은 나를 치던 악인들이 보응을 받는 것이 들립니다. 12절부터는 본격적으로 15절까지 의인의 축복과 번영을 노래합니다. 12절에 의인은 종려나무와 백향목 같이 성장합니다. 7절에 악인이 풀 같이 자라는 것과 아주 대비되는 모습이죠. 종려나무는 무성한 잎이 우산처럼 사람들에게 그늘을 주며, 달콤한 종려나무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백향목은 훌륭한 건축자재로써 위엄 있는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뻗어나갑니다. 의인의 성장이 그와 같다는 것이죠. 의인이 그렇게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호와의 집에 심겼기 때문입니다. 13절에서 보여지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뜰 안에서, 하나님의 품 안에 있을 때에만 번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품 안에 있는 의인은 늙어도,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결실하며, 그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집에 심겼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지나면 말라버리는 샘이 아니라, 영원히 솟아나는 샘 위에 심겼기 때문이지요. 마지막으로 15절에서는 하나님의 정직하심, 바위되심, 불의가 없음이 선포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십니다. 그는 그가 하신 말씀과 약속을 정직하게 지키실 것입니다. 지금 당장 악한 세력들이 불의를 행하며 들풀처럼 왕성해질지라도 그들은 결국 패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의 우리의 바위 되십니다. 우리가 피할 바위가 되시며, 어떠한 파도가 몰려와도 무너지지 않을 우리의 기초와 힘의 원천이 되십니다. 그에게는 불의가 없으셔서, 정의가 무너진 것을 결코 끝까지 보고만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심겨져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심겨져 있다는 것은 심겨져 있는 그 땅의 것을 빨아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빨아 들이는 것이죠.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이 우리의 영혼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세상과 연을 끊고 살아 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과 기도와 같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놓치지 않고 꽉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가운데 나를 어디에 얼마나 노출시키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를 품으시는 하나님 품에 거하며, 우리를 붙잡으시는 그 손을 붙잡기 위해 애쓰는 하루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1 하나님의 집에 잘 심기워 아름다운 열매를 결실하는 삶이되기를 2 악한 세력의 흥왕에 실족하지 않고, 우리를 품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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