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 시편 82편 – 묵상과 기도
찬송가 : 370장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시편 82편 “지존자 하나님”
시편 82편은 아삽의 시로 형식이 독특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하나님을 향한 호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82편은 크게 4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절은 신들의 모임에서 재판하시는 하나님, 2절부터 4절까지는 신들을 향한 고발과 선포, 5절부터 7절까지는 신들의 한계, 8절은 하나님을 향한 호소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 82편은 다른 시편들과 다르게 아무런 서론이 없이 시작합니다. 1절은 첫 번째 파트로 분류를 하긴 했지만, 그것이 서론이라고 하기에는 그 형식이 독특합니다. 1절에서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을 하신다며 재판을 하시는 모습으로 시작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 신들의 모임 가운데서, 즉 다른 신들을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작은 시편에서도 독특한 모습입니다. 비슷한 모양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신들의 모임이라는 것은 만신전, 즉 여러 신들을 모신 신전에서 여러 신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시기 때문에 이 신들의 모임이라는 용어는 ‘천상의 총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구약에서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서 욥기 1편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사탄이 나오는 모습이지요.
구약에서 재판정의 모습을 보면, 재판관을 주로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서 계십니다. 학자들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서신 것이 행동의 갑작스러움과 역동성을 보여주며, 일상적인 총회로 모였지만 갑작스럽게 재판정의 모습으로 바뀌어서 모인 자들을 재판하기 위해 서신 것이라고도 말을 합니다.
2절에서부터 4절까지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2절은 본래 히브리 원어 성경으로 보면 ‘언제까지?’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이러한 질문 형식은 이스라엘 재판 과정의 한 양식이었다고 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이 이 시편을 접하면, 아 이 상황이 재판정의 상황이구나, 라고 이해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재판관으로써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 대상은 바로 총회에 모인 다른 신들입니다. 그들의 잘못된 모습이 2절에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을 보고 있습니다. 악인의 낯을 본다는 것은 악인의 얼굴을 들어주는 것으로써 그 의미는 악인을 존중해 주고, 잘 돌보아 주며, 악인의 편을 들어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3절과 4절에서는 신들이 원래 해야 하는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며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재판을 받고 있는 그들이 이대로 행하지 않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악한 이들을 돌보아 주고, 그들의 뒤를 봐주고 있었던 것이죠.
5절은 하나님이 말하는 것인지, 시인이 말하는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을 수 있지만, 문맥상 화자가 말하는 것이 더 흐름이 좋은 것 같습니다. 4절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하시는도다’라는 표현으로 마무리가 되고, 화자인 시인이 5절부터 신들의 불완전함을 꼬집고 그들의 한계, 즉 결국에는 넘어지고 말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죠.
5절에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흑암 중에 왕래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44장 18절에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워져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깨닫지 못함이라”라는 말씀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사야 말씀의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깨닫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입니다.
5절에서 신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올바른 통치와 공의, 바른 질서입니다.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린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도덕적 근본 질서’가 흔들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들인 하나님이 세우신 올바른 통치, 공의, 질서 등에 무지한 것이죠.
6절도 이어서 시인의 고백과 선포입니다. 6절과 7절에서는 하나님의 재판을 받은 신들을 향해 선포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나,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7절에 보시면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넘어질 것이다. 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 모든 신들은 자신들이 신이며, 지존자 즉 신중에서도 최고의 신 의 아들들이라고 말함으로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지만, 7절에 보시면 그들 또한 영원하지 않고 사람처럼 죽으며, 지금 아무리 사람들이 고관처럼 높인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넘어질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8절로 시를 마무리하며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심판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지금은 고관들처럼 떵떵거리며 불의를 자행하는 모든 신들과 사람들을 심판해달라고 호소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지역마다 신이 다르고, 그 신의 힘이 그 지역 또는 국가의 힘이라고 인식되었던 사회 속에서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소유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상들과 그것을 따라 모든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무너지고 하나님의 뜻만이 세워지기를 소망하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지역마다, 국가마다 신을 모시고, 자기네 신이 잘났다고 이야기하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며, 그분의 질서만이 이 세상 가운데 존재해야 할 올바른 질서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신들을 향해 선포하는 것 이상으로 그 신들을 섬기고 따르는 모든 이들과 나라에 선포하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께 이 모든 것을 심판하시기를 호소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만 해도 우상이라 함은 명확한 편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성경에도 많이 언급되는 바알과 아세라 같은 존재들이죠. 눈에 보이는 명확한 형체와 하나님을 믿는 것과는 구별된 의식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물론 눈에 명확히 보이는 다른 신들, 다른 종교들이 있습니다. 분명히 종교다원주의를 통해서 얼렁뚱땅 우리의 믿음 가운데 들어오려는 모든 노력과 유혹과 간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지혜롭게 분쇄해야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무서운 것은 교회 안에 깊이 뿌리 내린 우상들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기보다, 세상의 권력과 물질의 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쫓아 살려고 하는 우리 안에 있는 우상입니다. 그 우상은 어떻게든 우리의 눈을 가리고 우리의 귀를 막아서 올바른 길을 걷지 못하게 하려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해왔던 영적 싸움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유혹하고 넘어뜨리려 하는 모든 세력과 힘들이 영원하지 않고 죽을 것이며, 넘어질 것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당장 우리 눈앞에 있는 그 세력은 강성해 보이지만,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것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부활의 주님께 접붙임을 받은 그의 지체이며, 하나님의 권속이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끼며 오늘 하루도 승리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