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시편 72편 – 묵상과 기도
찬송가 : 455장 –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시편 72편 “왕 같은 제사장”
시편 72편은 제왕시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왕의 모습을 노래한 시편이죠. 표제어와 전반부에 주의 판단력과 공의를 달라는 부분을 볼 때 마치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장면을 생각나게 합니다. 구약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한 탈굼 성경에는 표제어를 “솔로몬이 예언으로 말한 시, 오 하나님, 주님의 의로운 율법을 메시아 왕에게 주심시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초대교회에서는 이 시편의 주인공을 예수 그리스도로 여기고, 특히 동방박사가 주님 앞에 온 날을 기념하는 날에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72편은 크게 4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4절은 하나님으로 흘러나오는 왕의 통치, 5-11절은 이상적인 왕의 통치, 12-14절은 나라의 경계를 넘어선 왕의 통치와 영향, 15-17절은 사람들에게 복의 통로가 되는 왕의 통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20절은 이 시편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는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절에는 왕과 왕의 아들로 나오는데, 새로 왕위에 오르는 왕이 또 다른 왕의 아들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동일인물이라는 소리죠. 여기서 왕은 하나님께 판단력과 공의를 구합니다. 그 판단력과 공의는 2절에 백성과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는데 쓰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닌 공의와 정의로 모든 자를 재판하는 것이죠.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의가 백성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모습은 3절에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준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절에 그 평강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는데,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고, 압박하는 자를 꺾는다고 말씀합니다.
5-11절 이상적인 왕의 통치로써 하나님께 받은 공의와 판단력이 그 나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묘사합니다.
5절에 압박하는 자들은 해와 달이 있을 때, 낮밤으로 항상 주를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공의는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손길이지만, 압박하고 억압하는 손길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인 것입니다.
6절은 농사를 시작할 때 적절하게 내리는 단비와 풍족하게 내려서 땅을 깊이 적시는 폭우를 뜻합니다. 왕의 통치와 다스림은 필요한 단비와 많은 비처럼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줍니다.
7절의 그의 날, 그가 다스리시는 날, 그의 통치가 땅에 미치는 날에는 의인이 흥한다고 합니다. 달이 다할 때까지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여기에서만 등장하고, 학자들은 ‘측량할 수 없이’, ‘복이 쌓을 것이 없도록’이라는 맥락으로 이해한다고 합니다. 굳이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시간이라는 맥락에서 달이 다 닳도록이라고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시간이 다하도록 평강이 풍성하게 넘칠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왕의 통치는 이제 공간적으로 넓혀져 갑니다.
8절의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여러 번 언급된 구절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된 모든 땅에 대한 시적인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나라 구석구석에 그의 통치가 미친다는 것이죠.
9절에서는 광야에 사는 자라는 표현으로 나라의 경계를 넘어 대적들 또한 그 앞에 엎드리게 되는 것을 묘사합니다. 티끌을 핥는 것은 철저한 패배 후에 항복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10절에서 다시스는 선박으로 유명한 곳으로 요나가 도망하려고 했던 곳입니다. 그런 다시스의 왕과 멀리 있는 지중해의 섬들의 왕들까지 조공을 바칠 정도로 왕의 영향력이 큰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스바는 오늘날 예맨 지역을 말하고, 시바는 아직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나라들까지 왕에게 복종하고 왕을 높이는 모습입니다.
11절에는 모든 왕들이 그 왕에게 절하며 섬김다고 마무리합니다.
12절부터 14절까지는 다시 왕의 영향력이 사회정의 쪽으로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왕은 여러 나라들을 굴복시키고 조공을 받는 강력한 왕이지만, 그 왕은 그 힘을 백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데 쓰지 않습니다.
12-13절에는 궁핍한 자, 가난한 자를 돕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14절에는 그들의 생명을 존귀히 여기는 모습으로 생명을 구원하고 그들의 피가 눈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것으로 가난하고 궁핍한 약자의 생명이라고 해서 함부로 다루어지는 사회가 아니라, 그들의 생명도 존귀하게 여겨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5절부터는 이상적인 결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15절의 그들은 해석이 좀 애매합니다. 왕인지, 아니면 앞에 나오는 가난한 자들인지 궁핍한 자들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궁핍한 자들이 어떻게 금을 얻을 수 있냐며, “왕이여 만수무강 하시고, 스바의 황금을 받으십시오.” 라고 해석을 하기도 하지만, 가난한 자들조차 스바의 황금을 취할만큼 사회가 개선되고 가난한 자들의 삶도 부유해지는 것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왕을 위하여 기도하고 찬송할 것입니다.
그 날은 16절에 황폐한 땅의 이미지가 있는 산 꼭대기에도 곡식이 풍성할 만큼 풍요로워지며, 레바논의 백향목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풍성한 모습으로 열매가 맺히고, 국가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성에 있는 자는 땅의 풀 같이 세기 힘들정도로 왕성하게 많아질 것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17절에 그의 이름은 영구히 알려질 것이며,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해처럼 사람들에게 오르내릴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힘이 있다고 해서 강압적이고 흉포한 왕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복을 받고, 사람들은 그를 복된 왕이라고 칭송할 것입니다.
18-19절을 통해 결국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왕이 나라를 잘 다스리고, 여러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고, 가난한 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 18절에서는 기이한 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이 세상 가운데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정의를 세상으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하죠. 물론 때로는 우리의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을 볼 때, 이것이 가능이나 할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으신 분입니다. 이 모든 것을 행하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대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1.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과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도록
2. 우리가 받은 사랑과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 환경 가운데 흘려 보낼 수 있도록